...

제2부 · 폐 끼치지 않기

제13장보기 흉하지

难看吧

중국어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제13장 보기 흉하지

그녀는 칼을 뽑았다.

포샤오가 움직이는 순간, 칼날 위의 청람빛이 반 치쯤 치솟았다.

반 치. 거기가 끝이었다.

그 위를 무언가가 누르고 있었다. 막는 것이 아니었다. 받아 넘기는 것도 아니었다. 누르는 것이었다. 칼몸 바로 위에서 내리눌렀다. 고르게 눌렀다. 칼날 전체를 눌러 잡았다. 그 반 치의 빛띠를 금속 속으로 도로 눌러 넣었다. 빛띠가 들어간 뒤 칼몸은 잿빛이었다. 철골과 같은 빛깔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칼은 떨어졌다.

떨어진 것은 직선 내려베기 한 번이었다.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칼을 올릴 때는 어깨 높이, 거둘 때는 허리 높이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도장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한 번이었다. 손목의 자세를 바로잡는 데 쓰는 동작이었다. 다섯 살 아이도 할 줄 안다.

그녀는 자세를 거두었다. 다시 들어 올렸다.

두 번째 칼은 첫 번째 칼과 같았다.

그녀가 되풀이한 것이 아니었다. 바꾼 것이었다. 두 번째로 올린 것은 사선 올려베기였다. 손목을 바깥으로 젖히고, 팔꿈치는 낮게 두어야 했다. 들어 올리는 중간에 그 무언가가 눌러 왔다. 눌러 오자 손목은 저절로 바른 자리로 돌아왔다. 팔꿈치도 저절로 올라가, 앞의 칼과 같은 높이에 맞춰졌다. 칼이 반쯤 내려갔을 때, 그녀는 이미 어디에 떨어질지 알고 있었다.

떨어진 것은 여전히 그 직선 내려베기였다.

세 번째 칼은 그녀가 일부러 보기 흉하게 올렸다. 무게중심은 발 바깥 가장자리에 실었다. 어깨가 먼저 나갔다. 칼등이 앞을 향했다.

떨어진 것은 여전히 그 직선 내려베기였다.

세 칼 사이의 간격은 같았다. 세 칼이 지나간 길은 겹쳐서 한 줄이 되었다. 세 칼 동안 그녀의 손목 각도는 완전히 같았다. 너무 같아서, 그녀는 그 각도가 자기가 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그녀 대신 정해 놓은 것이었다. 몹시 배려하듯 맞춰져 있었다. 가장 다치기 어려운 자리에.

철골 위의 형광등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됐습니다. 눈에 띄지 마십시오.”

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붙었다. 네 글자, 세 글자. 간격도 같았다. 말이 끝나자 그것은 없어졌다. 탑 안이 이렇게 비어 있으니, 그 소리를 되돌려 보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미쓰키는 칼을 허리 옆으로 거두었다.

그녀는 자기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무 세게 쥐었기 때문이다. 손마디 위의 각성 무늬가 아직 빛나고 있었다. 청람빛이 뼈의 선을 따라 손가락 뿌리까지 흘렀다. 그 앞은 칼이었다. 칼에 닿으면 사라졌다.

그녀는 네 번째 칼을 시험해 보았다.

이번에는 기수식을 잡지 않았다. 칼을 허리 옆에서 곧장 밀어냈다. 밀어낸 것은 칼끝이었다. ‘동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반쯤 밀었을 때, 그 무언가가 눌러 왔다. 그녀 대신 칼을 어깨 높이까지 올렸다. 그녀 대신 기수식을 잡았다.

떨어진 것은 여전히 그 직선 내려베기였다.

접부채가 한 번 휘둘러졌다.

부채면이 그린 호는 짧았다. 한 자가 채 되지 않았다.

그다음 시간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섯 번째 칼은 참격이었다. 참격이 나가는 순간, 칼날 앞에 꽃이 한 무더기 떠올랐다. 아주 옅은 분홍이었다. 한 조각씩 바깥으로 흩어졌다. 그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첫날 밤부터 칼을 따라다녔다.

꽃은 채 모양을 갖추기도 전에 누레졌다.

가장자리부터 말려 올라갔다. 색은 분홍에서 미백색으로 바랬다. 다시 갈색으로 바랬다. 그러고는 부서졌다. 조각이 땅에 닿았을 때는 이미 재였다. 조금씩. 바람이 한 번 스치면 흩어졌다. 격자 위에 옅은 갈색 자국이 한 줄 남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도 없어졌다.

여섯 번째 칼이 반쯤 내려갔을 때 그녀의 팔이 가라앉았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팔이 그녀의 뜻보다 느렸다. 그녀는 손을 내리려 했다. 손은 내려갔다. 그러나 중간에서 한 토막이 어긋났다. 그 토막 동안 그녀의 팔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숨이 따라오지 못했다. 들이쉬는 숨은 아직 중간인데 동작은 이미 끝나 있었다. 가슴이 부풀어 있었지만 쓸 데가 없었다. 그녀는 입을 벌려 숨을 한 번 더 들이쉬었다. 그 한 번의 숨은 일곱 번째 칼 뒤에 떨어졌다.

무릎이 먼저 꺾였다.

그녀가 꺾은 것이 아니었다. 무릎이 그녀보다 먼저 정했다. 왼쪽 무릎이 두 치 가라앉았다. 다 가라앉고 나서야 그녀는 자기가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칼로 땅을 짚어 몸을 받쳤다. 칼끝이 격자 위를 짧게 미끄러졌다. 미끄러진 자국이 비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탑 몸통 네 면의 시계판들이 휘둘리듯 돌았다. 시계판마다 뒤로 반투명한 잔상이 한 줄씩 끌렸다. 잔상의 머리가 앞선 잔상의 꼬리에 이어졌다. 한 줄 한 줄 이어져 한 바퀴가 되었다. 닫혔다.

그 한 바퀴가 하루 낮밤이었다.

그녀는 셀 수 있었다. 네 시 방향에서 시작해, 한 바퀴의 눈금이 모두 한 번씩 켜졌다. 열두 개가 다 켜지고 나서 다시 열두 개가 켜졌다. 하나도 건너뛰지 않았다. 눈금은 스물네 개였다. 닫힌 한 바퀴.

그녀가 휘두른 칼은 세 번뿐이었다.

이 한 바퀴 동안, 그녀의 머리 한 타래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입술이 한 줄 갈라졌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가 쓸려 살갗이 벗겨졌다. 무릎 아래 그 바닥 타일에는 그녀가 버틴 자국이 하얗게 한 줄 남았다. 그녀의 시계는 출발하기 전 그 1분에서 멈춰 있었다. 시계는 땅 위에서 맞춘 것이었다. 탑 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꼬박 하루 낮밤. 칼은 세 번.

“이미 많이 애쓰셨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하십시오.”

미쓰키는 칼을 땅에 짚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숨을 세었다. 넷째 숨에 이르러서야 고르게 돌아왔다.

그녀는 한 가지를 알아냈다. 이 빈터에 내려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맞은편의 그 사람은 숨을 한 번도 헐떡이지 않았다. 잘 조절해서가 아니었다. 아예 없었다. 그 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내림이 없었다. 어깨에도, 가슴에도 없었다. 기모노의 긴 소매가 늘어져 있었다. 드리운 선은 줄곧 그 선 그대로였다.

이렇게 오래 뛰고 이렇게 많이 걸은 사람인데, 몸 어디에서도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부채면의 이름 띠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한 장씩 아래로 떨어졌다. 아주 천천히 떨어졌다. 격자에 닿으면 펼쳐졌다. 바닥에 떨어질 때는 좁은 종이 한 장이었다. 펼쳐지고 나니 온전한 그림자 한 덩이였다. 어깨, 머리, 팔, 바짓단의 주름까지 전부 있었다.

그림자가 땅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자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양복. 짙은 회색. 단추는 두 번째까지 채워져 있었다. 넥타이 매듭은 모두 같은 크기였다. 구두 끝은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다. 얼굴은 없었다. 손가락 사이의 경계도 없었다. 그래도 자세는 온전했다. 어깨는 수평이었다. 턱은 당겨져 있었다. 손은 몸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하나, 둘, 일곱, 열 몇.

그것들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걸어와 원을 이뤘다. 그다음 자기 자신을 맞추기 시작했다. 가장 바깥 원에서 걷는 몇은 보폭을 조금 줄였다. 그녀의 오른쪽에서 걷는 몇은 어깨선을 반 치 내렸다. 그녀와 같은 높이가 될 때까지 내렸다. 그녀가 왼쪽으로 한 걸음 옮기면, 원도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원의 중심은 언제나 그녀였다.

그녀가 칼을 한 번 휘둘렀다. 칼은 두 그림자 사이를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가 닫혔다. 흔적도 없이 닫혔다.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두 번째 원에서 막혔다.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그 그림자들이 마침 그녀가 디딜 자리에 서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막으려고 서두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곱 번째 원까지 둘러싸였을 때, 그녀는 스스로 고개를 숙여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어깨는 그것들과 같은 높이였다. 그녀의 숨은 그것들이 내딛는 박자에 얹혀 있었다. 칼을 쥔 손은 몸 옆에 늘어져 있었다. 늘어진 각도는 가장 가까운 그림자와 완전히 같았다. 탑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원 안에는 같은 키, 같은 폭, 같은 자세의 것이 스물 몇 개나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살아 있었다.

가려낼 수 없었다.

“보세요. 당신도 이제 모두와 똑같아졌네요.”

미쓰키의 왼쪽 무릎이 또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버티지 못했다. 그녀는 반쯤 무릎을 꿇었다. 칼은 무릎 위에 가로로 놓였다. 칼몸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맞은편의 그 사람이 걸어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넉 걸음이면 딱 떨어졌다. 미쓰키에게서 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미쓰키의 어깨를 향해 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각도였다. 손바닥은 아래를 향했고, 손가락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이 손이 가는 방향은, 어깨를 눌러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었다.

손이 반쯤 왔을 때 멈췄다.

미쓰키의 어깨에서 3~5센티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살짝 벌어져 있었다. 손바닥도 여전히 아래를 향했다. 그렇게 멈춰 있었다. 앞으로 가지도 않았고, 거두지도 않았다.

약 2초 동안 멈춰 있었다.

“붙잡는 것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입니다.”

손이 거두어졌다. 거둬진 길은 뻗어 나왔던 길과 똑같았다. 속도도 같았다. 기모노의 긴 소매가 내려와 손목을 덮었다. 드리운 선이 처음의 그 선으로 돌아갔다.

그 그림자들은 계속 원을 그리며 걸었다.

종이 한 조각이 원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것은 길 저쪽에서 바람에 실려 올라왔다. 좁은 종이 한 가닥이었다. 손가락 하나 너비에 석 치 길이였다. 원 밖에서 두 바퀴를 돌았다. 두 그림자의 어깨 틈으로 들어와 떨어졌다. 미쓰키가 무릎 위에 가로로 놓은 칼의 칼등 위에 내려앉았다.

칼등은 평평했다. 그래서 종이는 그 자리에 머물렀다.

미쓰키는 고개를 숙여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종이 한 장의 사분의 일이었다. 세로로 찢은 것이었다. 찢긴 자리는 왼쪽에 있었고, 보풀이 일어나 있었다. 찢은 사람은 먼저 접지 않았다. 바로 손으로 찢었다. 그래서 섬유가 뒤집혀 한 올씩 일어나 있었다. 찢을 때 손이 한 번 떨렸다. 찢긴 자리 가운데에 작게 패인 곳이 있었다.

종이에는 칸이 인쇄되어 있었다. 윗줄은 인쇄된 글자였다. 가장 오른쪽 란에는 두 글자가 찍혀 있었다.

사유.

그 란은 비어 있었다.

다 쓰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비어 있었다. 아래쪽에 연필로 눌러 쓴 자국이 있었다. 무언가를 쓰고 지운 것이다. 흑연이 종이 결에 박혀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다. 비스듬히 보면 서너 획의 방향이 보였다.

미쓰키는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올렸다.

그녀가 집은 것은 보풀이 일지 않은 쪽 끝이었다.

그녀의 다른 손이 외투 위로 왼쪽 안주머니를 한 번 눌렀다.

거기에도 종이가 한 장 있었다. 세 번째 장이었다. 위에는 오래된 접힌 자국이 두 줄, 새로 난 것이 한 줄 있었다. 사유 란을 그녀는 한 번 채운 적이 있었다. 채우고 나서 스스로 그어 지웠다. 두 획이었다. 아주 가볍게.

그녀는 손가락 사이의 좁은 종이를 뒤집어 뒷면을 보았다.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몰랐다. 이 종이를 누가 찢었는지는 알았다. 찢은 사람은 접지도 않고 찢었다. 찢고 나서도 남겨 두었다. 남겨 두고는 몸에 지니고 다녔다. 종이 가장자리에 보풀이 일 때까지 지니고 다녔다.

칼등 위의 그 보풀진 가장자리는 펴지지 않았다. 이 원 안의 모든 것—격자, 그림자 병사의 어깨선, 바지 주름선, 떨어지는 재의 방향—은 가지런했다. 이 보풀진 가장자리만 삐죽 들려 있었다.

열아홉 살 되던 해 겨울, 도장 뒤편의 그 눈밭이었다.

그날은 상대도 없었고, 심사도 없었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다. 저녁 수련은 일찍 끝났다. 사부님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눈은 오후에 내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발목 조금 위까지 쌓였다. 밟으면 종아리까지 푹 빠졌다.

그녀는 원래 불을 끄러 가던 길이었다.

그녀는 눈밭 한가운데에 이르러 멈춰 섰다. 멈춘 까닭은 말할 수 없었다.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몸이 움직이고 싶어 했다. 연습하고 싶은 것도,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안에서 무언가가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나가지 못하면 안에서 계속 치밀었다.

그녀는 목도를 방 안에 두고 나왔다.

그녀는 빈손으로 눈 속을 한 번 오갔다. 길은 곧지 않았다. 눈이 깊은 곳에서는 다리를 들어야 했다. 다 걷고 나서 그녀는 멈춰 섰다. 오른손이 허리 옆에서 한 번 가라앉았다가, 앞으로 쭉 나갔다.

한 번 뽑았다.

손에는 칼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거둬들이는 자세에서 그녀는 반 걸음을 헛디뎠다. 눈 밑에 돌의 모서리가 있었다. 오른발이 그 위로 미끄러졌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왼쪽 무릎이 눈 속으로 꿇려 들어가 구덩이를 냈다. 손은 여전히 칼을 거두는 모양이었다. 거둔 것은 공기였다.

보기 흉했다.

그녀는 거기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들어 방 쪽을 보았다. 방 안의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장지문에는 사람 그림자가 없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웃었다.

웃을 때 내쉰 입김이 길었던 것을 그녀는 기억했다. 방금 그은 칼의 선보다 길었다. 입김은 무릎 위까지 떠가서야 흩어졌다. 웃기를 마치고 일어나 무릎의 눈을 털었다. 방으로 돌아가 불을 껐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기록지에 그 일을 적었다. 네 줄을 적었다. 다 적고는 찢었다. 찢기 전에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그래서 찢긴 자리가 가지런했다.

“그 한 칼은 이기려고 한 게 아니었어.”

그녀는 이 말을 할 때도 아직 반쯤 무릎을 꿇고 있었다. 칼은 무릎 위에 가로로 놓여 있었다. 그 좁은 종이는 두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나는 그냥 움직이고 싶었을 뿐이야.”

그녀는 일어섰다.

일어선 뒤에도 그녀는 자세를 잡지 않았다.

그녀는 무게중심을 왼발에서 오른발로 옮겼다.

이 동작은 어떤 교범에도 없었다. 그것은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힘을 아끼지도 않았다. 다음 동작을 위한 준비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를 반 박 늦췄다. 왼발에서 오른발로 가는 그 한순간, 어느 쪽에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옮기고 나서도 그녀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위치는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완전히 쓸데없는 동작이었다.

둘러싼 그림자들이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몰랐다. 몇은 무게중심을 오른발로 옮겼다. 몇은 아직 왼발에 있었다. 원의 가장자리가 한꺼번에 어긋났다. 두 군데에 틈이 생겼다.

미쓰키가 칼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기수식을 엉망으로 잡았다. 왼발이 땅에 닿을 때 바깥으로 벌어졌다. 발바닥 반쯤 가까이 벌어졌다. 어깨가 손보다 먼저 나갔다. 너무 일찍 나갔다. 몸 전체가 앞으로 한 번 솟구쳤다. 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오른쪽 허리 아래에서 비스듬히 위로 뒤집혀 올라왔다. 이 각도는 손목을 스스로 옭아맨다. 교범에는 ‘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베어 나갔다.

칼날 위의 그 청람빛은 이번에는 도로 눌리지 않았다.

내리누르던 것은 아직 있었다. 칼몸 위의 그 압력이 느껴졌다. 고르게 눌렀다. 그러나 이 칼의 길은 비뚤어져 있었다. 압력은 자기가 눌러야 할 곳을 찾지 못했다. 존재하지 않는 각도를 눌렀다. 허공을 누른 것이다.

도기가 땅에 떨어졌다.

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칼날 앞에서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았다. 한 줄기의 비뚤어진 빛뿐이었다. 가장자리가 들쭉날쭉했다. 비스듬히 밀려 나갔다. 그녀의 발밑에서 여덟 걸음 밖까지 밀려 나갔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서 격자가 깨졌다.

“보기 흉하지. 그래도 그건 살아 있어.”

격자 위에 그림자가 한 줄 눌려 나왔다.

짙은 색이었다. 가장자리가 딱딱했다. 두께가 있었다. 한쪽 끝은 미쓰키의 구두 뒤꿈치에 이어져 있었다. 다른 쪽 끝은 바깥으로 펼쳐졌다. 세 칸, 네 칸, 다섯 칸을 덮었다. 잘려 나간 뒤에 남은 틈과는 달랐다. 틈은 흰 것이다.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검다. 있다는 뜻이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격자선은 이곳에서 끊겼다. 깔끔하게 끊겼다. 건너편에서 다시 나왔다.

탑 기단 일대에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빛을 가렸다.

그림자가 앞으로 기어갔다.

그것은 그녀가 방금 벤 칼의 방향을 따라갔다. 가만히 서 있는 양복 차림의 그림자 병사들 사이를 기어갔다. 그들은 고개를 숙여 자기 발밑을 보았다.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다른 곳의 땅이었다.

그림자는 여덟 걸음째에서 멈췄다.

구두 한 켤레 앞에서 멈췄다.

아주 깨끗한 구두였다. 구두 등에는 재 한 점 없었다. 바짓단이 구두 등에 딱 닿아 있었다. 1밀리미터도 더 내려와 있지 않았다.

그림자의 앞끝이 그 구두의 코끝을 눌렀다. 그러고는 코끝에서 위로 기어올랐다. 발등까지 올라가 멈췄다.

그 구두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접부채는 아직 들려 있었다. 눈썹 높이에 들려 있었다. 부채면은 바깥을 향했다. 양쪽 팔꿈치의 각도가 같았다. 쪽머리 옆에 꽂힌 작은 시계의 초침은 아직 돌고 있었다.

그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미쓰키가 그 사람을 본 뒤로, 그 사람이 들고 있던 각도를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개가 숙여지자 접부채도 따라 기울었다. 3도였다. 아주 작았다. 그러나 양쪽 팔꿈치의 각도가 달라졌다.

그 사람은 자기 발을 보고 있었다.

“……제 발밑에, 그림자가 생겼습니다.”

그 말이 나올 때도 입매는 여전히 그 미소의 모양이었다. 소리는 여전히 그렇게 작았다. 여전히 귓가에 붙어 있었다. 메아리는 어느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나 그 간격이 흐트러졌다.

앞의 두 글자 사이가 비었다. 말 전체에서 어느 곳보다도 길게 비었다.

미쓰키는 칼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거리를 둔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이제 그만 멈춰도 돼.”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끝음이 아래로 떨어졌다.

맞은편의 그 사람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기 발 위의 그 어두운 곳을 여전히 보고 있었다. 미소의 곡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백자 가면의 한가운데, 이마에서부터 아래로, 아주 가느다란 금이 한 줄 배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