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 탑이 밝혀진 밤
제3장시보의 목소리
报时的声音
중국어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칭롼이 손을 눈앞에 들어 올렸을 때, 손등의 그 어두운 빛깔 무늬는 막 둘째 마디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손은 저절로 들려 있었다. 조금 전 피부 밑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손목뼈에서 위로, 한 마디씩 올라왔다. 빠르지 않았고, 가렵지도 않았다. 그녀는 손을 뒤집어 보았다. 그렇게 손은 눈앞에 올라와 있었다. 눈앞에 왔을 때 그것은 마침 둘째 마디에 닿아 멈췄다.
그녀는 이 플라스틱 의자에 세 시간을 앉아 있었다. 오른발 뒤꿈치는 줄곧 땅에 닿지 않았다. 글을 쓸 때의 앉는 법이었다. 땅에 닿으면 글이 써지지 않았다. 지금도 뒤꿈치는 들려 있었다. 다만 더는 아래로 누르지 않았다.
솥 위의 김이 비스듬히 위로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멈췄다. 움직이지 않는 흰 선이 되어 있었다. 차양 가장자리의 작은 등 줄은 아직 켜져 있었다. 그 등 아래의 가는 먼지도 멈춰 있었다. 한 알 한 알 제자리에 떠 있었다. 바로 전 1초와 똑같은 자리였다. 솥 안의 기름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일곱 번째 테이블 위의 법랑 그릇에서는 방금 넣은 고추기름 한 숟갈이 한쪽 가장자리를 펼쳐 놓고 있었다. 그 가장자리는 그릇 테두리에서 손가락 두 개 너비쯤 떨어진 곳에 멈춰, 더는 흘러내리지 않았다. 고가도로 위에서는 차 한 대가 이음매를 넘고 있었다. 바퀴가 신축 이음매를 누르는 소리는 절반만 울린 채 멈춰 있었다.
같은 1초에, 다른 네 손도 눈앞에 들려 있었다.
도쿄 막차의 유리창에는 손 하나가 눈앞에 들려 있었다. 유리 밖 터널 조명은 세 번째 칸에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손등의 무늬도 둘째 마디와 셋째 마디 사이에 멈춰 있었다. 서울의 낡은 연습실 거울에는 손 하나가 눈앞에 들려 있었다. 네 손가락은 아직 턱을 위로 밀어 올리던 모양이었다. 손톱 자국의 흰 흔적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파리 돌계단 위에는 손 하나가 눈앞에 들려 있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오래된 굳은살이 있었다. 굳은살 위에는 더 새로운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 지난주 바닥을 짚을 때 생긴 것이었다. 뉴욕 약국 진열창 앞에는 손 하나가 눈앞에 들려 있었다. 손바닥은 쥐어져 있었다. 땀이 그 안에 쥔 것의 나사산을 살갗에 찍어 놓았다. 한 바퀴 한 바퀴, 몇 줄인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다섯 개의 탑이 같은 한 컷 안에서 완전히 멈췄다.
길가에서 올려다보면 탑 몸통은 아래쪽 한 토막만 보였다. 시선은 강철과 유리를 따라 위로 올라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닿지 않게 되었다. 그 위는 경계 없는 검은 어둠이었다. 탑 몸통에 다섯 가지 빛이 차례로 스쳤다. 옥빛 백금, 그림자 없는 형광 백색, 거울 은빛의 차가운 분홍, 금박 붉은 수지빛, 지폐 녹금빛. 각 빛은 한 번씩만 켜졌다. 한 번 켜진 빛은 두 번 다시 켜지지 않았다. 아직 이름을 대지 않은 다섯 사람이 먼저 각자의 패를 내보인 것 같았다.
탑의 비스듬한 위쪽, 다섯 도시의 하늘에는 저마다 그 원이 걸려 있었다. 상하이의 원은 북동쪽에 있었다. 밝은 면이 4분의 3을 차지했다. 도쿄의 원은 북쪽에 있었다. 절반이 밝았다. 서울의 원은 3분의 2가 밝았다. 파리와 뉴욕의 원에는 초승달 한 줄기만 남아 있었다. 어두운 쪽 넓은 면에는 조각난 빛이 떼를 지어 박혀 있었다. 한 조각 한 조각이 다른 도시의 밤 불빛이었다. 다섯 원 옆에는 검은 입구가 하나씩 열려 있었다. 입구는 모두 원보다 조금 높았다. 모두 탑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다음 그것들은 동시에 멈췄다.
3초 동안 도시 전체에서 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차양 철골 아래 가장자리에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았다.
둘째 박은 다섯 탑에서 동시에 밀려 나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가로로 한 겹 밀려왔다. 고가도로 아래의 조명 간판, 편의점 냉동고 문, 택시 지붕의 빈차 표지등, 탁자 위에 엎어 둔 휴대전화, 지하철 승강장에 줄지어 아직 막차를 안내하던 화면. 전 세계 모든 화면이 같은 1초에 하얗게 꺼졌다가, 같은 빛 한 덩이로 다시 켜졌다. 원래 그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 1초 이후로는 아무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도쿄 그 차량에서는 문 위의 흐르는 전광판이 다음 역 이름을 알리던 중이었다. 알리다 말고 바뀌었다. 서울 연습실에는 화면이 없었다. 맞은편 편의점의 화면 두 개가 유리 너머로 밝게 들어와 거울 벽에 떨어졌다. 거울 벽이 그 빛을 한 번 더 뒤집었다. 파리 지하철 입구의 매표기 화면이 잠깐 하얗게 질렸다. 기계 안에서는 동전이 아직 떨어지고 있었다. 다 떨어졌다. 뉴욕 선반 한 줄에서는 가격표 칸마다 작은 화면이었다. 작은 화면 수십 개가 동시에 바뀌었다. 소리는 아주 가벼운 찰칵 소리 수십 번이었다.
화면에는 빛나는 기호가 한 줄 떠 있었다. 획은 끊겨 있었다. 끊긴 자리는 날카로웠고, 가장자리 어디에도 흐려지는 곳이 없었다. 빛은 가장자리에 닿으면 바로 멈췄다. 기호와 기호 사이의 간격은 어디나 같았다. 줄과 줄 사이도 같았다.
그 획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읽어 냈다.
읽어 낸 방식은 글자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었다. 포장마차 주인은 들고 있던 국수 한 움큼을 도마 위에 도로 놓았다. 과일 장수는 저울을 내려놓았다. 그 위에 무엇이 쓰였느냐고 옆 사람에게 고개를 돌려 묻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귀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귓바퀴 안의 솜털 몇 가닥이 움직일 만큼 가까웠다. 메아리가 없었다. 한 문장이 끝나자 소리도 끝났다. 소리를 받아 줄 방도 없었고, 되돌려 보내 줄 벽도 없었다. 그것은 시보처럼 평온했다.
“하늘은 너무 높다. 우리가 이미 너희 대신 닿아 보았다.”
같은 말을 다섯 사람이 각각 한 번씩 들었다.
미쓰키는 멈춘 차량 안에서 그것이 역 안내 방송 밑에 눌려 있는 것을 들었다. 역 안내 방송은 아직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흐르지 않았다. 두 소리는 겹치지 않았다. 앞뒤로 나뉘어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재원은 그것이 자기가 세던 박자의 한가운데 떨어지는 것을 들었다. 그 자리는 원래 비어 있던 곳이었다. 그는 평생 그 빈자리에 강세를 양보해 왔다. 스완의 손은 그때 쇠난간 위에 얹혀 있었다. 밤의 난간은 차가웠다. 소리가 왔을 때 난간은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자기 손바닥을 한 번 보았다. 앤드루는 오래 해 온 동작을 했다. 소리의 출처를 찾는 동작이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기울이고, 또 한 번 기울였다. 네 방향을 다 시험해 보았다. 방향이 없었다. 소리는 어느 한 곳에서 오지 않았다. 이미 귓속에 들어와 있었다.
칭롼이 들은 것은 그 말의 뼈대였다. 열네 글자였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그녀는 또 한 가지를 들었다. 그 말이 끝났을 때 마지막 글자의 꼬리가 밖으로 끌려 나오지 않았다. 사람은 말을 마치면 늘 꼬리가 조금 남는다. 숨이 아직 남아 있고, 입 모양도 아직 남아 있다. 그 말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잘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는 데도 순서가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대부분은 목덜미 쪽이 먼저 풀리고, 머리가 두 치쯤 따라 내려갔다. 눈은 맨 나중에 내려갔다. 눈이 먼저 내려가고 목이 뒤따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더 깊이 숙였다. 턱이 옷깃에 닿을 때까지였다. 길모퉁이에서 과일을 파는 남자는 고개를 숙일 때도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다. 저울추가 저울대를 따라 끝까지 미끄러졌다. 그는 그것을 잡아 주지 않았다. 아이를 안은 여자는 먼저 아이의 머리를 자기 어깨에 눌러 붙였다. 그런 다음 자기 머리를 숙였다. 택시 기사는 앞 유리 너머에서 고개를 숙였다. 손은 여전히 핸들 위에 있었다. 열 시 십 분 위치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포장마차 주인은 긴 자루 철국자를 솥 가장자리에 도로 걸쳤다. 쇠가 솥에 부딪혀 소리가 한 번 났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숙인 것은 목이었다. 목이 먼저 풀렸고, 눈은 맨 나중에 내려갔다. 십일 년 동안 그는 이렇게 고개를 숙여 왔다. 순서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거리 전체에서 차양 가장자리에 있던 칭롼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러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세고 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설서인이었다. 세 살 때부터 그녀는 탁자 밑에 앉아 있었다. 머리 위는 탁자 판이었다. 탁자 판 위에는 성목과 단판 한 벌이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위에서 이야기하면 그녀는 아래에서 들었다. 손가락은 자기 무릎을 두드렸다. 그녀는 글자를 배우기 전에 판부터 익혔다. 일판삼안. 판은 세게 치는 한 번이고, 안은 가운데의 세 번이다. 한 번이라도 틀리면 할아버지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성목을 탁자에 눌러 한 번 내려놓았다. 탁자 판이 한 번 떨렸다. 그러면 무릎 위의 그녀 손은 어디가 틀렸는지 알았다.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한마디 한 적이 있다. “판은 재촉해서도 안 되고, 늘여서도 안 된다. 재촉하면 허둥대는 것이고, 늘이면 게으른 것이다.”
어느 해, 책 속의 한 대목을 더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날도 늘 하던 대로 무대에 올랐다. 이야기가 그 대목에 이르자 그 부분의 글자를 모두 빼 버렸다. 판은 그대로 쳤다. 글자는 줄었어도 판은 남아 있었다. 그 마디가 정확히 네 박만큼 비었다. 객석에서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찻잔은 여전히 울렸다. 누군가는 그 네 박 사이에 기침을 했다. 탁자 밑의 그녀만 알아들었다. 그 네 박은 비어 있었다.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거친 자국이 한 군데도 없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왜 아직도 치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성목을 거두면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 “판은 남겨 둔다. 글자가 돌아올 때 놓을 자리가 있어야지.”
설서장은 나중에 문을 닫았다. 단판 한 벌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성목은 남았다. 그것은 그녀의 집 장롱 속 낡은 신문 위에 눌려 있었다. 그녀는 열아홉 살 되던 해에 그것을 꺼내 한 번 쳐 보았다. 소리가 기억보다 둔했다. 나무가 이미 바싹 말라 있었다.
그녀는 이십여 년을 세어 왔다.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판부터 들었다. 누가 재촉하는지, 누가 늘이는지 알아들었다. 누가 말 한마디의 마지막 반 박을 훔쳐 가는지도 알아들었다. 회의에서는 상사의 판을 셌다. 원고를 고칠 때는 자기 판을 셌다. 오늘 밤 일곱 번째로 지운 것은, 다섯 번째 원고의 그 줄을 세어 보니 반 박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반 박은 그녀가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덧붙인 것이었다. 글자 하나만 더해도 자기가 쓴 글 같지 않게 된다.
탑이 말할 때, 그녀는 셌다.
그 말은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이 모두 같았다. 길이도 같은 수였다. 세 번째 글자에서 그녀는 알았다. 라디오 정각 시보도 그랬다. 여섯 번 울렸다. 앞의 다섯 번은 길이가 같았고, 여섯 번째는 한 박 늘어졌다. 늘어진 그 한 박은 사람에게 들려주려는 것이었다. 정각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탑의 그 말에는 여섯 번째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수였다. 재촉하지 않았고, 늘이지 않았고, 훔치지 않았다. 사람에게 반 박도 남겨 두지 않았다.
너무 가지런했다.
할아버지의 그 말은 사람에 대한 말이었다. 사람은 재촉하기도 하고 늘이기도 한다. 두 가지 모두 몸에서 나온다. 탑은 재촉하지도 않고, 늘이지도 않는다. 사람이 긴 말을 할 때는 중간에 숨을 고른다. 숨을 고르는 자리에서는 판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 조금 느슨해진 곳이 사람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목이 풀리기를 거부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손이 아직 세고 있었다. 세고 있는 동안에는, 사람은 고개를 든 채 들어야 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두 번 두드렸다. 두드린 것은 그녀 자신의 판이었다.
반 박이 어긋났다.
셋째 박: 자리를 내줌.
보이지 않는 그 한 겹이 길을 따라 쭉 밀고 지나가며, 보고 있던 사람까지 밀어냈다. 비닐 차양, 접이식 테이블, 전동 자전거, 길 건너 셔터가 한 겹씩 뒤로 물러났다. 길목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길목에서 돌아보니 포장마차는 손바닥만 한 빛 한 조각으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 빛 속의 검은 점 몇 개가 되었다. 더 위를 올려다보니, 다섯 탑은 아주 먼 곳에서 다섯 개의 못처럼 서 있었다.
탑은 마지막 말을 끝내고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위협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다. 되풀이하지도 않았다.
“탑 아래 선 자는 더는 고개를 들 필요가 없다.”
말이 끝나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거리는 2초 동안 조용했다. 그것을 받아 주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간판은 울리지 않았다. 유리는 떨리지 않았다. 고가도로의 차 흐름조차 납작하게 눌린 낮은 소리 한 줄만 남았다. 소리가 떨어진 자리는 비어 있었다.
숙인 고개는 11초 동안 그대로였다. 아무도 먼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일고여덟 살쯤 된 아이 하나가 고개를 반쯤 세웠다. 아이의 엄마 손이 그 아이를 도로 눌렀다. 뒷덜미를 눌렀다. 아주 가볍게 눌렀다.
비닐 차양이 다시 눌려 한 번 떨렸다. 차양 가장자리의 작은 등 줄이 따라 두 번 흔들리다 멈췄다. 따뜻한 주황빛 그 한 점이 거리 전체에서 처음으로 작아 보였다.
칭롼이 차양 아래에서 두 걸음 걸어 나왔다. 두 번째 걸음이 아직 덜 마른 시멘트 땜질 자리를 밟았다. 신발 밑창이 한 번 달라붙었다.
그녀가 하려던 말은 오늘 밤의 그 한 줄이었다. 일곱 번 지운 그 줄. 일곱 번째 지우고 나서 그녀는 삭제 키에서 손가락을 들었다. 말로 꺼낼 수 있을 때까지 남겨 두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입을 조금 벌렸다. 목이 한 번 움직였다. 오른쪽 귀 뒤에서 쇄골까지 이어진 그 곡선의 자리가 함께 조여들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 대목은 모두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 오래 볼수록 사람은 작아진다.
탑은 내려오지 않았다. 제자리에 선 채, 해야 할 일을 다섯 도시에서 동시에 끝냈다.
도쿄. 막차가 탑 아래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천장등의 흰빛이 차량 한 칸을 가득 누르고 있었다. 미쓰키는 텅 빈 차량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발밑에서 그림자를 찾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바퀴를 돌 때는 바닥을 세 번 내려다보았다. 차 문이 그녀 앞에서 미리 꽉 닫혀 버렸다. 그녀의 손은 허공에 멈춰 있었다. 문에서 칠팔 센티미터 떨어진 자리였다.
상하이. 조화 문자 탄막이 건물 틈에서 쏟아져 내려와 줄지어 짓눌렀다. 칭롼이 반 문장을 막 꺼냈는데, 그 반 문장은 입에서 3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획으로 쪼개졌다. 획들은 위로 빨려 올라갔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또 쪼개졌다.
“나는 그저 말을 끝까지 하고 싶었을 뿐이다.”
서울. 거울 무대가 낡은 연습실 바닥에서 올라와 재원을 가운데 두고 둘러쌌다. 거울의 칸 안에서 그의 얼굴은 한 칸 한 칸 잘려 있었다. 칸마다 바꿀 수 있었다. 사방의 보조광이 동시에 올라와 그를 비추었다. 그의 몸에는 자연스러운 그림자가 한 군데도 없었다.
“몇 장까지 고쳐야, 그게 나인 거지?”
파리. 붉은 테이프가 돌계단을 따라 번져 올라왔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먼저 낡은 운동화를 감았다. 네 바퀴를 감고 나서야 왼발로 옮겨 갔다. 스완은 발을 힘껏 한 번 들어 보았다. 들리지 않았다.
뉴욕. 가격표가 떼를 지어 떨어졌다. 어깨와 등, 손등과 신발 윗면에 가득 쌓였다. 손바닥의 나사 위에도 한 장이 걸렸다. 가슴의 글자 없는 군번표에도 한 장이 걸렸다. 앤드루가 손을 뻗어 약 선반 둘째 칸에 닿으려 하자, 라벨이 그의 손보다 먼저 달라붙었다.
“이 셈은 나도 맞출 수가 없다.”
다섯 줄기의 빛기둥이 높은 하늘에서 하나의 커다란 뚜껑이 되었다. 아래에는 얇은 빛 한 겹만 남았다. 더 위로 물러나 보면 다섯 사람은 점점 작아졌다. 차량 한 칸의 점 하나. 플라스틱 의자 옆의 점 하나. 거울 무대 한가운데의 점 하나. 돌계단 한 칸 위의 점 하나. 셔터 아래의 점 하나. 다시 한 걸음 물러나자, 다섯 점은 저마다 자기 도시의 불빛 속으로 오그라들었다. 더는 찾을 수 없었다.
다섯 점은 누구도 누구에게 닿지 못했다.
탑 쪽에서는 더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탑은 이 다섯 점을 보지 않았다. 다른 점도 보지 않았다. 탑은 할 말을 다 끝냈다.
앤드루는 쪼그려 앉았다.
무릎이 먼저 울렸다. 왼쪽 무릎이다. 그 소리는 둔했다. 살을 사이에 두고 나는 소리라서 그 자신만 들을 수 있었다. 십구 년이 됐다. 쪼그려 앉을 때마다 무릎은 먼저 한 번 울렸다. 울리고 나면 더는 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한 번도 부축하지 않았다. 그가 쪼그려 앉는 자세는 오래된 것이었다. 오른발을 먼저 디디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무게는 오른다리에 실었다. 쪼그려 앉은 뒤에도 그의 오른손은 줄곧 쥐어져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펼쳤다.
나사는 아직 거기 있었다.
M6. 머리 홈에는 스패너에 물린 자국이 한 줄 나 있다. 그 둘레가 반짝인다. 여러 번 조이고 풀면서 닳아서 생긴 것이다. 나사는 의족의 무릎 관절에서 풀어낸 것이다. 풀어낸 사람은 자기 집 문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손에 맞지 않는 몽키스패너로 사 분 동안 돌렸다. 풀어낸 뒤에는 그것을 앤드루의 손에 쥐여 주었다. 세 마디를 하고,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세 마디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나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방충문이 튕겨 돌아가면서 두 번 소리를 냈다. 두 번째 소리가 첫 번째보다 가벼웠다. 나사는 줄곧 간직해 왔다. 손바닥의 그 둘레 살은 다른 곳보다 두껍다. 쥐어서 생긴 것이다.
가격표는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한 장이 그가 펼친 손바닥에 떨어져, 마침 나사를 덮었다.
그는 가격표를 털어냈다. 털어낸 뒤에도 일어서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손가락을 오므리지 않았다.
뚜껑은 여전히 머리 위를 누르고 있었다. 손바닥의 그 자리는 이 거리에서 가격표에 덮이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다.
서울. 재원이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놓았다.
턱이 3밀리미터 도로 내려왔다. 거울 속 얼굴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턱선은 표준보다 0.4센티미터 짧았다. 그는 스물일곱 번째로 잰 뒤에는 세지 않았다. 매번 같은 수였다. 전에는 한 번 잴 때마다 손을 다시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들어 올리지 않았다. 그는 그 손을 보았다.
장면 밖의 도쿄에서는 역 안내 방송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네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안내 방송 밑에 또 다른 소리가 있었다. 종이 한 장을 다시 펼치는 바스락 소리였다. 휴가 신청서가 그녀의 손에서 펴졌다. 옛 접힌 자국 두 개와 오늘 밤 새로 접은 자국 하나, 모두 세 개였다. 세 개는 가로로 종이 면에 늘어서 있었고, 깊이가 제각각이었다. 첫 번째 자국이 가장 깊었다. 여러 번 눌러 생긴 것이다. 세 번째 자국이 가장 얕았다. 눌러 생긴 지 이십 분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첫 번째 자국에서 세 번째 자국까지 밀었다. 종이 면이 손끝 밑에서 세 번 불룩해졌다.
“세 번 접혔어도, 그래도 내가 쓴 글이다.”
돌계단 쪽에서 소리가 한 번 들려왔다. 신발끈을 다시 졸라매는 소리였다. 오른발 쪽이었다. 세 번째 구멍에서 그녀는 한 바퀴를 더 감았다. 발목 위에 감았다. 이 한 바퀴는 뛰어오를 때 신발이 벗겨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녀는 열일곱 살 때부터 그렇게 감았다. 왼발 쪽은 그렇게 감을 필요가 없다.
마지막은 칭롼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다시 올렸다. 삼켜졌던 그 줄을 그대로 다시 쳤다.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았다. 문장부호도 같았다. 다 치고 나서 그녀는 그것을 다시 보지 않았다.
다섯 사람은 같은 박에 자기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그들이 기댄 것은 같은 물건이 아니었다. 나사 하나, 얼굴 하나, 종이 한 장, 신발끈 하나, 한 줄의 글. 다섯 가지 모두 작았다. 다섯 가지 모두 손이 닿는 곳에 있었다.
이 박은 아무와도 맞지 않았다. 반 박 일찍 간 사람이 있었고, 반 박 늦은 사람이 있었다.
칭롼이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반쯤 멎었다.
빗방울이 땅에서 1미터 떨어진 곳에 멈췄다. 김은 흰 선이 된 채 멈췄다. 탄막의 획은 허공에 멈췄다. 뉴욕 쪽에서 떨어지던 종잇조각도 허공에 멈췄다. 탑은 움직이지 않았다. 거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은 그녀뿐이었다.
그녀를 보는 그 선은 오른쪽 귀 뒤에서 시작해, 그 동심 곡선의 첫 고리를 따라 천천히 180도를 돌았다. 곡선은 아직 빛나지 않았다. 고리는 하나도 켜지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 내내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세워져 있는 꼬치 통. 탁자 모서리에 있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법랑 그릇. 솥 가장자리의 철국자. 국자 자루가 바깥을 향해 있었다. 손만 뻗으면 집을 수 있는 각도였다. 포장마차 주인은 아직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걸린 짙은 회색 수건이 한쪽 끝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긴 쪽 끝이었다.
정면으로 돌았다.
그녀의 안경알에 김이 한 겹 서려 있었다. 방금 그 국물의 김이었다. 김 뒤에 그녀의 눈이 있었다.
동공 깊숙한 곳에 점 하나가 켜졌다.
하나뿐이었다. 바늘끝만 한 크기였다. 청람빛이었다.
그것은 밖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다. 그저 그만한 크기였다.
같은 1초에 다른 네 곳에서도 같은 점이 각각 켜졌다. 차창에 하나, 거울 속에 하나, 난간 유리에 하나, 물웅덩이에 하나. 물웅덩이 속의 것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재원의 옆얼굴 반쪽이었다. 턱에서 귓바퀴까지. 끊긴 자리가 거친 그 귀걸이가 빛 점 바로 옆에 있었다. 나머지 세 곳은 아직 빛 점일 뿐이었다. 얼굴 모양도 없었다.
네 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점과 같은 크기였다. 같은 밝기였다. 모두 바늘끝만 했다. 거리에서는 여전히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칭롼은 그 네 점을 바라보았다.
“……너희도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