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조화 아래에서
제6장일곱 번째
第七遍
중국어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반사하지 않는 검은 막이 내려와, 말을 하고 있던 얼굴 하나를 통째로 도려냈다.
얼굴은 한 노인의 것이었다. 그는 셔터 문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든 사람에게 말하고 있었다. 입이 열렸다 닫혔다 했다. 소리는 칭롼이 꺼 두었다. 말이 반쯤 나왔을 때 그 검은 막이 화면 위쪽에서 내려왔다. 옆으로 밀려온 것이 아니었다. 눌러 내려온 것이었다. 네 변이 가지런히 그의 이마와 턱 밑, 두 귀 바깥쪽을 잘라 댔다. 꼭 얼굴만큼 컸다.
휴대전화는 대나무 꼬치 통 위에 세워져 있었다. 화면 유리에 차양 가장자리의 작은 등 줄이 비쳤다. 따뜻한 주황빛 점 열다섯 개였다. 검은 막 위에는 점이 하나도 없었다. 유리는 여전히 같은 유리였다. 그 부분만 반사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번 셌다. 하나, 둘.
둘째 내리침이 떨어지자 검은 막이 줄었다. 네 변에서 안으로 오므라들어 납작한 띠 하나가 되었다. 글 한 줄만큼 높았다. 색도 빠졌다. 회백색으로 바랬다. 회백색 빈 띠 안에는 글자가 없었다. 노인도, 셔터 문도, 아래의 설명 한 줄도 전부 없어졌다. 이 띠만 남았다.
그녀는 아래로 화면을 밀었다. 서너 개를 건너면 또 한 줄이 나왔다. 더 내려가도 또 한 줄이었다. 너비는 모두 같았다. 오후부터 줄곧 이랬다.
그녀는 그 페이지를 닫고 초안을 열었다.
그 글은 그대로 있었다. 사백십이 글자였다. 맨 끝 한 줄은 어젯밤에 친 것이었다. 어젯밤에 지웠고, 한 글자씩 그대로 다시 쳐 넣었다. 글자 하나도 고치지 않았고, 문장부호도 고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한 번은 여덟 번째로 세지 않았다. 여전히 일곱 번째였다.
낮에는 직장에서 원고를 고쳤다. 남의 것도 고치고 제 것도 고쳤다. 고치고 나면 심사에 올렸고, 심사를 통과해야 인쇄되었다. 육 년 동안 어떤 글자에 동그라미가 쳐질지, 그녀는 심사하는 사람보다 먼저 알았다. 밤의 이 글은 직장 일이 아니었다. 쓰라고 한 사람도 없었다. 다 쓰고 나서 어디로 보낼지도 몰랐다. 첫 번째는 올봄에 썼다. 이 책상에서 썼다. 손바닥만 한 접이식 키보드로 썼다.
일곱 번 고친 곳은 모두 다른 데였다. 형용사는 빼고, 동사는 부드러운 말로 바꾸고, 마침표는 쉼표로 고치고, 긴 문단은 짧은 둘로 나눴다. 앞뒤의 글자들을 한 번씩 뒤로 비켜 주었다. 그 한 줄이 가운데 끼어서 덜 눈에 띄고 그냥 넘어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 한 줄 안에 붙어 있는 세 글자는 한 번도 비켜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그 말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판은 남겨 둬라. 글자가 돌아올 때 놓을 자리가 있어야 한다. 다른 글자들이 이리저리 비켜 가는 것은 그 세 글자에게 자리를 남겨 주는 일이었다.
먹혀 버릴 그 문장은 보지 않아도 알았다. 거기까지 치면 오른손 약지가 저절로 느려졌다. 그녀가 느리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판에도 반 박이 더 붙었다. 그 반 박은 그녀가 스스로 더한 것이었다. 글자 하나만 더해도 그 문장은 그녀가 쓴 것 같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먼저 화면을 캡처했다.
그리고 삭제 키를 누른 채 있었다.
커서가 거꾸로 움직이며 글자를 하나씩 삼켰다. 새끼손가락이 먼저 떨어지고, 약지가 따라가고, 검지가 마지막에 움직였다. 그 한 줄을 쓸 때는 매번 멈췄다. 지울 때는 손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지우는 것이 쓰는 것보다 순조로웠다.
화면 위쪽에서 초록색 알림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글자는 두 개뿐이었다. 통과.
그녀는 아무것도 제출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지웠을 뿐이었다.
그녀는 엄지로 그 초록 알림을 밀어 지웠다. 캡처한 화면은 앨범으로 끌어다 넣었다. 앨범은 설정 메뉴 밑에 숨어 있었다. 그녀의 지문을 대야만 열렸다. 안에는 모두 일곱 장이 있었다. 한 번 고칠 때마다 한 장씩이었다. 일곱 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다른 글자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세 글자만은 한 획도 바뀌지 않았다.
초안에서 그 한 줄이 비었다. 커서는 맨 왼쪽에 멈춰, 깜박였다.
그녀는 엄지를 올려 댔다. 엄지 살을 그 빈 줄에 대고 앞뒤로 문질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화면이 열을 받았다. 지문 자국의 기름 얼룩이 한 줄 생겼다. 글자는 나오지 않았다.
“일곱 번째야. 살아남을 수 있을 때까지 고쳤어.”
그녀는 아주 작게 말했다. 그 빈 줄에게 들려주려고.
솥 가장자리에서 한 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 빠진 자리 쪽이 먼저 울렸다. 둔한 소리였다.
포장마차 주인은 등을 돌린 채 솥 앞에 서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짙은 회색 수건이 걸려 있었고, 긴 쪽 끝이 늘어져 있었다. 그는 긴 손잡이 쇠국자를 고추기름 통에 넣고 밑바닥까지 눌렀다가 들어 올렸다. 붉은 기름이 이 빠진 자리에 걸려,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걸어와 그녀의 그릇에 부었다. 꼭 한 국자였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솥 앞으로 돌아갔다.
그릇에서 김이 솟아올라 안경알에 덮였다. 안경알 두 군데가 하얗게 되었다.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금이 간 법랑 그릇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흰 것 뒤에는 붉은 덩어리 하나만 남았다.
그녀는 웃었다.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눈은 따라 오지 않았다. 안경알이 허옇게 서려 있어서, 눈이 따라왔는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반 국자가 그녀의 양이었다. 작년 그 찬비가 내린 뒤로는 줄곧 반 국자였다.
한 국자는 어젯밤부터였다.
그녀는 이 두 가지를 맞춰 보았다. 삼 주 동안 발길을 끊었다가 돌아온 그날 밤, 그녀는 직접 솥 옆에 서서 김 너머로 조금만 더 달라고 했다. 그가 준 것은 반 국자였다. 더 많지 않았다. 달라고 할 때는 반 국자를 주었다. 달라고 하지 않고 한 입도 대지 않을 때는 한 국자를 주었다. 어젯밤 그녀는 일곱 번째를 지웠다. 오늘 밤에는 일곱 번째를 한 번 더 지웠다. 두 밤 동안 그는 각각 한 번씩 더 주었다.
그는 그녀가 무엇을 쓰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화면 위에서 오가는 그녀의 엄지뿐이었다.
그녀 쪽은 한 줄이 줄었고, 그의 쪽은 반 국자가 늘었다.
그녀는 그릇을 제 쪽으로 반 치 당겼다.
그녀는 백자 숟가락을 집어 들고, 그 한 국자의 붉은 기름을 국물에 섞었다. 조금씩 섞었다. 국물 빛이 바뀔 때까지 섞었다.
목둘레에서 아래로 두 손가락 너비쯤, 그 곡선의 줄은 옷 밑에 눌려 있었다. 어젯밤에는 빛났었다. 오른쪽 귀 뒤에서부터 고리 하나하나가 차례로 빛나 쇄골까지 이어졌다. 오늘 아침 일어나, 그녀는 거울 앞에서 목둘레를 당겨 열었다. 곡선은 그대로 있었다.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다만 잿빛이었다. 밝기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색만 빠져나갔다. 시멘트 같은 잿빛 막이 남아 있었다. 만지면 평평했다.
등 뒤의 깃털 두 장도 접혀 있었다. 어젯밤에는 펼쳐졌었다. 가운데에 틈이 남아 있어서, 그 틈으로 길이 보였다. 오늘 아침에는 좁은 띠 두 줄로 접혔다. 견갑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한쪽에 한 줄씩 붙었다. 차가웠다. 허리띠보다 그리 넓지 않았다. 그녀는 직장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었지만, 등을 의자 등받이에 한 번도 대지 않았다.
어젯밤에 막 손에 넣은 것이었다. 한숨 자고 나니 도로 거두어졌다. 탑이 먼저 거둬 간 것이 이것이었다.
차양 밖이 먼저 한 번 어두워졌다.
교차로의 대형 화면, 편의점 냉장고 문, 맞은편 셔터 문의 조명 간판, 대나무 꼬치 통 위에 세워 둔 이 화면까지, 같은 1초에 모두 검어졌다. 한 박 동안 검었다. 다시 밝아졌을 때는 모두 같은 옥백색 한 면이었다. 글자도 없고, 기호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흰 속에 금빛이 살짝 비쳤다.
숟가락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 그릇 안으로 떨어졌다. 붉은 기름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건지지 않았다.
거리 저쪽, 두 동 건물 사이의 틈에서 빛 한 줄기가 땅에서 위로 올라갔다. 강 건너편이었다. 빛은 탑 밑에서 시작해 곧장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그 검은 것에 닿자 끊겼다. 고가도로의 상판이 차양 위를 가로질렀다. 상판 위로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빛기둥의 아래 절반뿐이었다. 굵었고, 희었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거리의 사람들이 일어섰다.
첫 번째 테이블에 두 명, 세 번째 테이블에 한 명, 다섯 번째 테이블에 세 명이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릇은 밀어 놓지 않았다. 돈도 치르지 않았다. 일어선 뒤에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빛을 등지고, 서쪽으로.
교각 옆에서 자리를 기다리던 사람도 떠났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내려서 끌고 갔다. 뛰는 사람은 없었다.
걷다 보니 발걸음이 맞아 들었다. 처음에는 거리 전체가 어지럽게 울렸다. 수십 켤레의 신발이 제각기 밟았다. 스무 걸음 남짓 지나자 소리가 한 번씩 떨어지는 소리로 가지런해졌다. 한 번마다 무게가 같았다. 간격도 같았다. 셋까지 세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젯밤 탑이 말하던 그 판이었다.
포장마차 주인은 떠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솥 세 개 가운데 얕은 자리에 서 있었다. 발뒤꿈치는 옮기지 않았다. 불은 끄지 않았다. 가장 약하게 줄여 두었다.
그녀는 일어나 의자를 테이블 밑으로 밀어 넣었다. 주머니에는 두 번 접은 지폐가 한 장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릇 밑에 눌러 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동쪽으로 걸었다.
사람들이 마주 걸어왔다. 하나씩, 차례로,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옆으로 틀어 한 사람을 지나가게 했다. 또 한 사람을 지나가게 했다. 누군가의 팔꿈치가 그녀의 팔에 스쳤다. 그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녀를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거리 전체의 발걸음이 같은 박에 떨어졌다. 그녀의 발은 그 박 뒤로 반 박 늦게 떨어졌다. 그녀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허벅지 바깥쪽에서 자기 판을 누르고 있었다. 일판삼안이었다. 발은 손을 따라 걸었다.
교차로 두 개를 지났다.
첫 번째 교차로의 신호등은 여느 때처럼 바뀌었다. 빨간불로 바뀌었다, 초록불로 바뀌었다, 다시 빨간불로 바뀌었다. 멈추는 차는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두 번째 교차로에서 그녀는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차양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고가도로 밑의 작은 등 줄이 아직 켜져 있었다. 아주 작은 따뜻한 주황빛 한 점이 거리 전체의 등 사이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계속 걸었다.
강변 제방에 계단이 하나 나 있었다. 열아홉 계단이었다. 돌로 된 계단이었다. 표면에 습기가 한 겹 배어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 조금 전까지 강변에서 야경을 보던 사람들이 모두 몸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고, 한 계단씩 내려갔다. 모두 같은 속도였다. 칭롼은 거슬러 위로 올라갔다.
고무창이 젖은 돌을 밟았다. 먼저 붙었다가, 다음에 떨어졌다. 계단마다 가장자리에 미끄럼 방지 홈 세 줄이 파여 있었다. 신발 밑창이 그 위를 누르고 지나가면 홈이 한 번 물었다가 놓았다. 붙는다. 문다. 놓는다. 그녀가 한 계단 위로 올라가면, 한 사람은 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 사람은 그녀의 옆을 지나갔다. 바람이 조금 일었다. 바람에는 강물의 비린내가 실려 있었다.
일곱 번째 계단에서 한 여자의 가방이 그녀의 허리에 부딪혔다. 여자는 멈추지 않았다.
열두 번째 계단에서 어깨 뒤쪽이 한 번 풀렸다.
긴 비단 천이 저절로 나왔다. 양쪽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짙은 남청빛 한 자락이었다. 처음에는 젖어 있었다. 무거웠다. 팔에 붙어 아래로 처졌다. 손목에 이르자 갑자기 가벼워졌다. 끝자락이 흩어졌다. 잘게 흩어져 작은 빛점이 되었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위로 올라갔다.
목둘레 밑이 따라서 한 번 조여 들었다. 그 잿빛 막이 가장 안쪽 고리부터 갈라졌다. 아주 가느다란 금이 여럿 생겼다. 밑의 빛이 그 금을 조금씩 밀어 벌렸다. 첫 번째 고리가 빛났다. 청람빛이었다. 한 바퀴였다. 오른쪽 귀 뒤에 붙어 있었다.
두 번째 고리는 빛나지 않았다. 여전히 잿빛이었다. 등 뒤의 좁은 띠 두 줄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위로 올라갔다. 열아홉 번째 계단이었다.
강폭이 넓었다. 강 건너 그 탑은 물 저편에 서 있었다.
기둥 세 개와 비스듬한 버팀대 몇 줄. 큰 구 하나가 기둥 가운데에 끼어 있었다. 구의 창들이 한 칸씩 흰빛으로 켜져 있었다. 더 위로는 빛기둥이 탑 밑에서 솟아올라 탑의 몸통을 감싸고 있었다. 위로 갈수록 희어졌다. 희어져서 위쪽 구는 그림자 하나만 남았다. 그 그림자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이 남은 것을 전부 삼켜 버렸다. 그녀는 탑 꼭대기를 볼 수 없었다.
북동쪽 하늘에 그 원이 걸려 있었다.
그 원은 강 위 하늘에 걸려 있었다. 달보다 이십여 배 컸다. 너무 커서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돌려야 전체를 볼 수 있었다. 밝은 면이 4분의 3을 차지했다. 가장자리에는 연보라 테두리가 한 바퀴 있었다. 밝은 면에는 흰 구름이 있었다. 덩어리져 떠 있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어두운 쪽의 작은 부분에는 잘디잔 빛 알갱이 몇 개가 있었다. 원의 오른쪽 위, 원보다 조금 높은 곳, 탑 쪽에 검은 입구가 하나 열려 있었다. 입구 가장자리에는 아주 가느다란 흰 고리가 있었다. 그 고리 밖의 별들은 비틀려 휘어 있었다.
어젯밤에도 그 원은 거기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계단을 내려가던 사람들 가운데 고개를 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안경을 벗었다.
안경알 한쪽에 흰 점이 있었다. 빛기둥의 흰빛이었다. 빛이 닿으면 안경알은 그 빛을 되돌려 보냈다. 되돌려 보내는 그 순간, 저편은 그녀가 어디 있는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았다.
여섯 살 그해 설서장 뒤편 대기실에서 그녀는 막 가장자리에 서서 비천을 추는 사람을 보았다. 무대 가장자리 옆 조명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소품을 나르던 남자가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 “꼬마가 뭘 봐.” 그녀는 가지 않았다. 그 대목을 끝까지 보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녀는 빛이 얼굴에 닿지 않는 곳에서 보는 법을 익혔다. 열두 살에 안경을 쓰면서 한 가지를 더 익혔다. 무언가를 볼 때 턱을 조금 당기는 것이다. 두세 도쯤 당기면 빛이 안경알 윗가장자리에 떨어져 되돌아가지 않았다. 십육 년 동안 턱은 줄곧 당겨져 있었다.
어젯밤 이후로는 안경을 쓰지 않아도 잘 보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녀는 그래도 안경을 썼다. 손이 머리보다 빨랐다.
그녀는 안경을 접어 겉옷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턱을 들었다.
그녀는 보러 온 것이었다. 그 빛에게 보여 주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빛기둥이 이때 움직였다.
탑 밑에서 한 줄기가 갈라져 나왔다. 강 수면을 따라 가로질러 왔다. 빠르지 않았다. 가는 길마다 수면을 흰 줄 하나로 비추었다. 강가에 닿자 난간을 따라 걸었다. 비어 있는 긴 의자 한 줄을 지났다. 사람이 버린 종이컵 하나를 지났다. 계단 꼭대기에 이르러 그녀의 신발 코 앞에서 멈췄다.
찾아온 것이었다. 어젯밤 그 빛은 공중에서 한 번 돌았다. 사람을 고르는 것 같았다. 오늘 밤에는 고르기를 마쳤다.
빛은 희었다. 흰빛 속에 차가운 금빛이 조금 있었다. 가장자리는 칼로 벤 듯 반듯했고, 번진 데가 없었다.
오른쪽 귀 뒤의 그 고리가 뛰었다. 한 번씩, 한 번씩, 그녀의 판을 따라서.
“그 문장은 내가 스스로 지운 거야. 오늘 밤 내가 가서 되찾을 거야.”
말하는 동안 첫 번째 고리가 더 환하게 빛났다. 두 번째 고리는 여전히 잿빛이었다. 목소리가 나갔다. 강 위에는 그것을 받아 줄 것이 없었다. 바람이 목소리를 서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안으로 밟아 들어갔다.
왼발은 아직 젖은 돌 위에 있었다. 오른발이 내려앉자 젖지 않았다.
바닥은 옥백색이었다.
네모난 벽돌이 한 장씩 깔려 있었다. 장마다 크기가 같았다. 벽돌 틈은 줄마다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종이 한 장도 끼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 그녀의 발밑에서부터 아주 먼 곳까지 이어졌다. 그녀의 오른발 신발 밑창에서 흘러나온 물이 벽돌에 자국 하나를 남겼다. 그다음은 왼발, 또 하나.
전각 안에는 길을 막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도 벽이었다. 옥백색이었다. 문도 없었고, 틈도 없었다. 아까 그 빛이 어디로 들어왔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기둥도 없었고, 등도 없었고, 창도 없었다. 벽에는 글자가 한 자도 없었다. 빛은 벽이 스스로 내고 있었다. 고르게 퍼져 있었다. 사방이 똑같이 밝았다. 벽도 옥백색이었다. 두껍고 굽어 있었고, 위로 모여 천장을 이루었다. 벽은 바깥의 빛을 조금 통과시켰다. 바깥에 무언가 있는 것은 보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갔다. 발소리가 나가 벽에 부딪혔다. 꼬리를 끌며 되돌아왔다. 그 꼬리는 두 박만큼 길었다. 빈 곳이어야만 소리가 이렇게 길게 끌렸다.
왼쪽 그 벽은 달랐다. 꼬리가 짧아졌다. 돌아오는 것도 빠르고 둔했다. 그쪽은 벽 너머에 무언가 아주 큰 것이 닿아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 더 걸어 귀를 기울였다. 왼쪽은 여전히 둔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면에는 계단이 있었다. 스물일곱 계단이었다. 옥백색이었다. 한 계단마다 높이가 같았다. 그녀는 아래에서 위로 두 번 셌다. 두 번 다 스물일곱이었다.
계단 꼭대기 한가운데에 나무 말뚝이 서 있었다. 먹빛이었다. 사람보다 한참 높았다. 말뚝 몸통에는 얕은 홈이 여러 줄 나 있었다. 이렇게 먼 데서는 결이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었다. 말뚝에는 오래된 금이 하나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틈에는 작은 흰 천 조각이 끼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흰 점 하나였다.
그가 말뚝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먼 데서는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윤곽 하나뿐이었다. 옥백색 긴 장삼이었다. 옷자락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 허리에는 먹빛 띠 하나가 단단히 매여 있었다. 그는 맨손이었다. 두 손은 흰 천으로 감겨 있었다. 천은 손가락 뿌리에서 손목까지 감겨 있었고, 손가락은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오른쪽 손목의 흰 천은 왼쪽보다 두꺼웠다. 한 바퀴 위에 한 바퀴가 눌려 있었다. 소매 끝까지 감겨 있었다. 몇 바퀴인지 셀 수 없었다.
그는 두 손으로 포권을 했다. 주먹이 손바닥을 감싸고 가슴 앞에 모였다. 무술하는 사람의 예였다. 오른손이 포권에서 반 치쯤 풀려 가슴 앞에 멈췄다. 기수식을 끝내지 못한 자세였다.
설서장 뒤편에는 극단의 의상 상자가 놓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사람이 이렇게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한 박 동안 자세를 잡으면 객석에서 갈채가 터졌다. 그 한 박 동안 사람은 숨을 쉰다. 가슴이 무대 의상 밑에서 오르내렸다. 가까이 앉은 사람에게만 보였다.
그가 반 초 동안 자세를 잡았다.
이 반 초 동안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전각 안에는 먼지가 있었다. 아주 가늘었다. 빛 속에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이 반 초 동안에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녀의 비단 천 끝에서 위로 올라가던 빛점들도 멈췄다. 그의 가슴은 움직이지 않았다.
반 초가 지나자 첫 번째 파문이 그의 발밑에서 밀려 나왔다.
바람은 없었다. 소리도 없었다. 파문은 스물일곱 계단을 한 계단씩 타고 흘러내렸다. 바닥까지 흘러내리더니 벽돌에 붙어 그녀를 향해 밀려왔다. 그녀의 신발 밑창에서 흘러든 물웅덩이 몇 개가 먼저 결을 일으켰다. 결은 모두 바깥으로 향했다. 그다음은 그녀였다.
그녀는 밀려서 뒤로 미끄러졌다. 고무창이 벽돌 위에서 짧게 두 번 끼익거렸다. 긴 비단 천이 눌려 펴져 등에 달라붙었다.
멈추었을 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벽돌을 셌다. 맨 아래 계단과의 사이가 정확히 벽돌 열두 장이었다.
그는 그녀를 여기에 세우려 했다.
칭롼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턱은 당기지 않았다.
그녀의 오른쪽, 어깨와 같은 높이의 자리에서 공기 속에 직사각형 하나가 떠올랐다.
옅은 옥백색 바탕이었다. 테두리는 없었다. 왼쪽 위 모서리에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그녀였다. 정면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었다. 턱은 두세 도 당겨져 있었다. 직장 사원증에 있던 그 사진이었다. 사진 밑에는 글자 몇 줄이 있었다. 무엇이 쓰여 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아래로는 숫자 몇 줄이 있었다. 숫자와 숫자 사이의 간격이 같았다. 맨 끝 줄은 글자가 아니었다. 회백색 빈 띠 하나였다. 그녀의 휴대전화에 있던 그 띠와 너비가 같았다.
그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오른쪽 그 직사각형에 떨어졌다가, 안경을 쓴 그 사진 위에 떨어져 멈췄다.
그녀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사진 옆, 팔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쪽으로 한 번도 옮겨 오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질서가 곧 조화다.”
목소리는 하나였다. 글자마다 말뚝의 박자에 떨어졌다.
그녀는 셌다. 다섯 글자, 다섯 박이었다. 한 박에 한 글자씩,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전각이 이렇게 크니 그녀의 발소리는 두 박을 끌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끌리지 않았다. 귀에 곧장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말이 끝나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조화가 곧 복종이다.”
다섯 글자, 다섯 박이었다. 앞 문장과 사이를 둔 것도 한 박이었다.
말을 마친 그 박에, 그의 오른주먹이 한 박에 맞춰 왼손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말뚝도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박자는 말뚝 쪽에서 왔다. 한 박 한 박, 그녀는 셀 수 있었다.
벽은 빛을 통과시켰다. 그녀에게는 바깥의 흐릿한 밝음이 보였다. 강 건너, 그녀가 방금 걸어온 쪽이었다. 첫 박에 강 쪽의 그 한 자락이 어두워졌다. 둘째 박에는 그 뒤쪽 한 자락이었다. 셋째 박, 넷째 박, 한 자락씩 서쪽으로 물러났다. 여섯째 박에 벽 바깥에는 가로로 누운 밝은 선 하나만 남았다. 고가도로였다.
일곱째 박. 고가도로의 그 선이 끊어졌다.
그 작은 등 줄은 그녀가 세어 본 적이 있었다. 열다섯 개였다. 고가도로 밑, 동쪽에서 세 번째 교각 옆에 걸려 있었다. 이 벽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먼 곳에서는 그 등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본 것은 그 선이 끊어진 것뿐이었다. 끊어진 뒤로 그 일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주머니에는 그 메모가 아직 있었다. 적힌 것은 시간 하나뿐이었다. 밤 열 시 반이었다. 그날 길을 쓸던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대답해 준 퇴근 시간이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휴대전화 화면은 하얬다.
엄지가 허벅지 바깥쪽을 두 번 눌렀다. 한 번은 가볍게, 한 번은 세게.
“복종이 곧 행복이다. 너는 오늘 밤 행복하다——그 문장은 네가 스스로 지운 것이다.”
뒤의 절반은 그녀의 것이었다. 강변 계단 위에서 그녀가 했던 그 문장이었다. 그가 그 말을 가져갔다. 글자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나’ 자를 ‘너’ 자로만 바꿨다. 길이도 똑같았다.
줄표가 있는 곳에서 한 박이 비었다. 사람은 긴 말을 할 때 그쯤에서 늘 숨을 고른다. 숨을 고르는 곳에서는 판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의 그 한 박은 비어 있었다. 말끔하게 비어 있었다. 숨도 없었고, 느슨해짐도 없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빼 버린 그 대목을 떠올렸다. 글자는 뺐어도 판은 그대로 쳤다. 무대에는 꼬박 네 박이 비었다. 그것도 이렇게 말끔했다. 그 네 박은 남겨 둔 것이었다.
사진 아래의 그 숫자 몇 줄이 움직였다. 맨 끝의 회백색 빈 띠 옆에 글자 두 개가 더 생겼다.
그는 그 두 글자도 소리 내어 읽었다. 여전히 한 목소리였다. 글자마다 말뚝 위에 떨어졌다. 한 글자에 한 박이었다. “통과.”
둘째 글자에 이르자 음이 조금 위로 올라갔다. 아주 조금이었다. 잴 수 있을 만큼의 조금이었다.
칭찬하는 어조였다. 그녀는 직장에서 그런 어조를 여러 번 들었다. 원고를 올려보내면, 심사하는 사람이 전화 저편에서 다 넘겨 보고 이 두 글자를 말했다. 그때도 둘째 글자가 위로 올라갔다.
그가 말한 글자들은 전각 안에서 메아리를 한 점도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