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 자유의 가격표
제30장그냥 건물일 뿐
只是一栋楼
중국어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앤드루가 몸을 낮춰 쭈그려 앉았다. 왼쪽 무릎이 먼저 굽었다. 절반쯤 굽었을 때 소리가 한 번 났다. 둔하고, 오래된 소리였다. 그는 멈추고,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끝까지 굽혔다. 돌바닥은 차가웠다. 찬 기운이 바짓가랑이를 타고 위로 기어올랐다. 군화 앞코는 새김선에서 11센티미터 떨어져 있었다. 아까 착지할 때 재어 둔 수와 같았다. 이렇게 앉자, 그의 얼굴과 그 가면이 같은 높이에 놓였다.
자유의 가면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앤드루는 그가 언제 무릎을 꿇었는지 알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유의 가면은 횃불 뒤에 서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횃불만 움직였다. 지금 그는 제단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릎이 돌바닥을 누르고 있었지만, 돌바닥에는 눌린 자국이 없었다. 가는 풀 한 포기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등은 아직 곧았다. 아주 가지런하게 곧았다. 왼손은 무릎 바깥쪽에 놓여 있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돌바닥을 짚고 있었다. 아주 평평하게 짚고 있었다. 오른손은 아직 횃불 손잡이를 쥐고 있었고, 손가락 마디는 고정된 각도로 굽어 있었다. 무릎 양쪽의 천은 아주 낡았다. 솔기가 한 번 터졌다가 다시 꿰매져 있었다. 아주 촘촘하게 꿰매져 있었다.
가면 한가운데에 가는 틈이 하나 갈라져 있었다. 틈은 이마 한가운데서 아래로 내려가, 콧등을 지나 턱까지 이어졌다. 갈라질 때 소리는 없었다. 틈은 아주 가늘었다. 가장자리는 새것이어서, 가면의 껍데기보다 한 겹 더 밝았다. 틈 밑의 색은 녹청이 아니었다. 옅었다. 훨씬 옅었다. 틈 안에 아주 가는 빛 한 줄이 있었다. 가면 안쪽에서 비쳐 나오는 것이었다. 돌바닥의 빛이 아니었다. 어깨 갑옷의 틈, 팔꿈치의 틈, 무릎의 틈, 그 안은 모두 비어 있었다. 틈 속의 어둠이 보일 만큼 비어 있었다. 이 틈들에 걸려 있던 가격표는 이제 없었다.
그의 가슴은 움직이지 않았다. 앤드루는 그곳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한 번도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발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빛이 돌 틈에서 올라와 그의 무릎 밑 돌바닥을 비추었다. 그런데 그가 꿇은 자리는 비어 있었다. 돌바닥 위에 그의 형체가 없었다.
마지막 아홉 장의 가격표가 그의 오른손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의 손은 아직 횃불을 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나씩 풀렸고, 종잇조각이 그 틈으로 떨어져 나왔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번째 장은 약지 관절에 걸려 한 바퀴 뒤집힌 뒤에야 떨어졌다. 아홉 장 모두 돌바닥에 떨어졌다. 종이 뒷면이 위를 향했다. 소리는 없었다. 마지막 한 장이 떨어질 때, 돌바닥의 새김선이 한 번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그의 등 뒤에서 화폐 홀로그램이 다시 밝아졌다. 숫자가 한 칸씩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까지 떨어지면 다시 꼭대기로 돌아갔다. 숫자 하나가 한 자리에 멈춘 채 더는 뛰지 않았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보는 것은 앤드루의 손이었다.
앤드루의 오른손이 뻗어 나가 두 사람 사이에서 멈췄다. 손바닥이 위를 향했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땀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땀은 바람에 식었다. 아주 빨리 식었다. 이 손은 거두어지지도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앤드루는 상대를 끌어 일으키지 않았다. 이 손에는 서명할 자리가 없었다. 승인 칸도 없었다.
이 손은 예전에 종이에 서명한 적이 있었다. 그 대체품 전표였다. 수령인의 이름은 윗줄에 적혀 있었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훑어 내려갔다. 글자마다 맞았다. 서명할 때, 펜촉은 종이 위에서 한 번 멈췄다가 내려앉았다. 그 멈춤은 아주 짧았다. 그 자신도 기억해 두지 않을 만큼 짧았다. 지금 손은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 한 번보다 오래 멈춰 있었다.
다른 네 사람은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칭롼의 숄은 몸 옆에 늘어져 있었다. 끝자락의 빛 점들은 이미 흩어지고, 천의 무게만 남아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숄이 두 번 감겨 있었다. 풀지 않았다. 미쓰키는 직도를 가슴 앞에 가로로 들고 있었다. 칼끝은 아래를 향했고, 시선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칼 그림자가 돌바닥 위에 가늘고 검은 한 줄로 놓여 있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왼쪽 넓은 소매 밑에 종이 한 장이 눌려 있었다. 종이 귀퉁이가 조금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소맷부리를 천 너머로 한 번 눌렀다가 놓았다. 스완의 왼발 새틴 토슈즈 앞코는 돌바닥 위에 거두어진 채 꼼짝하지 않았다. 오른발 운동화는 잿가루를 밟고 있었다. 밑창의 무늬가 깊이 눌려 있었다. 재원은 가장 바깥에 서 있었다. 그의 그림자 무늬는 등에 멈춰 있었다. 느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았다. 네 사람 모두 새김선 뒤로 물러나,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누구 하나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내딛지 않았다.
제단 위의 바람은 약했다. 별 모양 성벽의 틈으로 들어와 가는 풀을 눕혔다가 다시 세웠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자유의 가면이 먼저 숨을 들이쉬었다. 어깨가 먼저 올라가고, 그다음 가슴이었다. 끝까지 들이쉬고, 조금 더 들이쉬었다. 가면의 균열이 한 올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그가 처음으로 들이쉰 숨이었다. 다 들이쉬고 나서도 가슴은 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거기 멈춰 있다가, 박자보다 반 박 늦게 내려갔다.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다. 돌바닥의 가는 풀조차 움직이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아무도 내 자유를 사 간 적 없다. 가격표를 단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나 ‘이건 내가 고른 것이다’라는 그 말조차, 그들이 나에게 나눠 준 것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돌바닥이 그것을 받았다. 별 모양 성벽도 그것을 받았다. 받은 뒤, 한 번 더 돌아왔다. 그의 목소리보다 반 박 느렸다.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갈 곳이 생겼다. 그 한 번 돌아온 것은 메아리였다. 앤드루는 아주 똑똑히 들었다.
메아리가 되돌아가는 동안, 돌 틈의 가는 풀이 다시 한 번 쓰러졌다. 제단 한가운데를 향해 쓰러졌다가, 천천히 다시 일어섰다.
앤드루의 손가락이 한 번 움직였다. 손끝은 차가웠고, 손바닥의 땀은 아직 있었다.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돌바닥 위를 한 바퀴 돌아 성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제단 한가운데로 돌아와 거기 멈춘 뒤에야 흩어졌다.
그의 오른손은 아직 거기 멈춰 있었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그는 돌리지 않았다. 손바닥의 땀이 절반쯤 말랐다. 남은 절반은 아주 천천히 식었다.
칭롼이 손목에서 숄을 풀었다가, 다시 감았다. 단단히 감았다. 미쓰키의 가슴 앞 칼끝이 한 치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스완의 왼쪽 손목에서 비늘 한 장이 뒤집혀 열렸다. 거기 멈춘 채 다시 닫히지 않았다. 스완의 오른발이 돌바닥 위에서 한 번 움직였다. 운동화가 땅에 닿는 소리는 둔했다. 아주 묵직하게 둔했다. 닳아 낡은 신발 한 짝이 내야 할 소리였다. 미쓰키는 자유의 가면을 보지 않았다. 그녀가 보는 것은 앤드루의 손이었다. 등 뒤의 화폐 홀로그램이 한 박 멈췄다. 숫자가 더는 떨어지지 않다가, 그다음에야 다시 떨어졌다. 스물네 개의 홀로그램 무용수가 바로 그 한 박 사이에 흩어졌다. 하나도 남지 않았다. 재원의 그림자 무늬가 반 박 늦게야 등에 다시 붙었다. 돌바닥의 가격표가 바람에 한 장씩 날려 올라가, 별 모양 성벽의 틈으로 날아 나갔다.
횃불이 자유의 가면의 오른손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끝까지 떨다가, 놓았다. 미사일 모양의 횃불이 돌바닥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였다. 앞코는 제단 가장자리를 향했고, 꼬리에서는 아직 가는 숫자가 새어 내려왔다. 돌바닥에 떨어지면 꺼졌다. 그 한 토막의 숫자 흐름이 허공에서 끊겼다. 한 토막 한 토막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았다. 불이 꺼졌다.
하나. 둘. 셋.
네 번째에, 불이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불이었다. 불의 가장자리는 떨렸다. 숫자처럼 가지런하지 않았다. 불꽃의 뿌리는 아주 작았다. 횃불 꼬리의 갈라진 틈에서 피어올랐다. 한 가닥 한 가닥, 가닥과 가닥 사이에 어둠이 있었다. 미쓰키의 칼몸에 불이 비쳤다. 칼등에 비친 그 한 점은 아주 작았고, 금세 미끄러져 사라졌다.
두세 걸음 떨어져 있었는데도, 앤드루의 얼굴이 먼저 열기에 팽팽해졌다. 불꽃이 돌 틈의 가는 풀 한 포기를 물었다. 탁, 소리가 났다. 풀이 타서 휘었다. 까맣게 그을린 한 토막이 생겼다. 바람이 별 모양 성벽의 틈으로 밀려들어 불꽃을 기울였다. 제단 가장자리 쪽으로,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가지런하지 않게 기울었다. 바람이 잠깐 멎자 불꽃이 일어섰다. 아주 곧게 일어섰다가, 다시 바람에 기울었다. 불은 주홍빛이었다. 작은 한 덩어리뿐이었다.
자유의 가면의 왼손이 돌바닥에서 들렸다. 손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손가락이 먼저 돌바닥을 떠났고, 그다음 손목, 그다음 팔꿈치였다. 손가락은 길었다. 관절마다 틈이 한 줄 한 줄 나 있었고, 틈 속의 실은 모두 끊어져 있었다. 새김선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아주 옅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 손이 선 앞까지 가서 한 번 멈췄다. 앤드루의 손까지는 아직 손가락 하나만큼 남아 있었다. 손이 멈췄다. 한 박 동안 멈췄다.
그러고는 스스로 선을 넘었다.
선 저편의 잿가루가 손에 끌려 조금 일어났다. 한 번 날렸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손끝이 앤드루의 손바닥에 닿았다. 쥐지 않았다. 닿기만 했다. 손끝은 차가웠다. 금속의 차가움이 아니었다. 사람의 손이 돌바닥 위에 오래 있었을 때의 차가움이었다. 그 순간, 앤드루 손바닥의 땀이 그 한 점의 차가움에 빨려 들어갔다. 그는 닦지 않았다.
자유의 가면이 자기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아무도 부축하지 않았다. 무릎이 돌바닥을 떠날 때, 돌바닥에는 자국이 남지 않았다.
새김선 옆의 돌바닥이 한 군데 갈라졌다. 한 걸음 너비였다. 선의 안쪽에서 바깥쪽까지 줄곧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틈으로 돌계단이 드러났다. 한 단 한 단 아래로 늘어서 있었고, 결은 모두 한 방향을 향했다. 이것은 성궤 회랑의 돌계단이었다. 돌계단의 가장자리는 차가운 빛이었다. 아래에는 바람이 없었다. 돌계단의 모서리는 많은 사람의 신발에 닳아 둥글어져 있었다. 맨 위 몇 단만 아직 모가 서 있었다. 한쪽에 아주 가는 흰 선이 한 줄 있었다. 위 단에서 아래 단으로 이어졌다. 끊기지 않았고, 넓지도 않았다. 돌 자체의 결이었다. 끊긴 자리 밑에서 흰빛이 조금 비쳐 올라왔다. 아주 먼 곳에서 온 빛이었다. 그의 손등을 비추어, 나사의 나사산을 밝혔다.
첫 번째 단 위에 흰 종잇조각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가장자리가 가지런했다. 가격표에서 찢겨 나온 한 토막이었다. 종잇조각은 뒷면이 위를 향했다. 그는 줍지 않았다.
앤드루가 틈 가장자리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망치는 그의 옆에 가로로 누워 있었다. 왼쪽 아래팔 위의 지휘 고리는 아직 돌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 돌았다. 그는 몸을 낮추고, 한 단 한 단 아래로 세어 내려갔다. 돌계단은 간격이 고르지 않았다. 아래로 갈수록 좁아져서, 열 몇 번째 단쯤에 이르자 군화 뒤꿈치는 발 반쪽만 한 자리에만 놓을 수 있었다. 발걸음이 내려앉아도 울리지 않았다. 그의 숨이 돌계단에 떨어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서른한 번째 단에 가로줄 하나가 있었다. 한쪽 끝은 깊고, 한쪽 끝은 얕았다. 마흔네 번째 단에 또 가로줄 하나가 있었다. 위의 것보다 얕았고, 가장자리에 보풀이 일어 위로 젖혀져 있었다. 쉰일곱 번째 단의 가로줄은 아주 평평했다. 손으로 새긴 것 같지 않을 만큼 평평했다. 일흔 번째 단의 가로줄은 아주 짧았다. 기울지 않았고, 양 끝의 깊이가 같았다. 네 줄.
그는 한 줄 한 줄 다 살펴보았다. 깊이가 달랐다. 같은 깊이의 줄은 두 개도 없었다. 쉰일곱 번째 단 옆에, 문질러 지워진 얕은 자국이 하나 있었다. 다른 곳보다 밝은 면 한 조각만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만지지 않았다. 세는 데 넣지도 않았다.
일흔 번째 단까지 셌을 때, 그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숫자들이 그의 머릿속에 한 줄로 늘어섰다. 줄의 끝은 빈칸이었다.
일흔한 번째 단, 일흔두 번째 단. 그는 계속 아래로 세어, 여든세 번째 단까지 셌다. 그의 무릎이 여든세 번째 단의 모서리를 눌렀다. 모서리는 다른 곳보다 얇았다. 눌렀을 때 돌이 가볍게 한 번 튀었다. 그는 잠깐 멈췄다가, 무게를 옮겼다. 끊긴 자리는 새것이었다. 돌 색이 다른 곳보다 밝았다. 끊긴 면에는 줄 하나 없었다. 새로 끊긴 자리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흰 알갱이 하나가 있었다. 소금이었다. 돌 위에서 말라 있었다.
그는 왼손을 폈다. 손바닥의 나사는 아직 있었다. M6. 나사산에 렌치에 물린 자국이 한 줄 있었다. 그 나사는 진료소 문 앞에서 풀어낸 것이었다. 그것을 그의 손바닥에 놓을 때, 노병은 한마디만 했다. “네가 가지고 있어.” 그는 왜냐고 물었다. 노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나사는 그의 바깥 주머니에서 한 달 가까이 지냈다. 안감을 닳게 해 동그란 자국을 냈다. 나중에 그는 그것을 왼손 손바닥으로 옮겼다. 무언가를 쥘 때면, 그것이 줄곧 그의 손바닥을 배겼다.
그는 나사를 뒤집어, 나사산을 아래로 하고 돌바닥에 댔다. 힘을 주지 않았다. 나사산이 저절로 나아갔다. 나아가며 돌 속을 긁어, 넓은 선 하나를 냈다. 긁을 때 아주 가는 소리가 났다. 그 자신에게만 들릴 만큼 가늘었다. 가운데 토막은 좀 더 깊었고, 양 끝은 얕았다.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얕았다.
가로줄 하나. 돌가루가 떨어졌다. 땅에 닿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 새기고 나서, 그는 나사를 들어 끊긴 자리의 빛에 비춰 한 번 보았다. 나사산에 잿빛 흰 돌가루가 한 겹 묻어 있었다. 그는 엄지로 닦아 냈다. 나사는 원래의 빛으로 돌아왔다.
다섯 번째 줄. 그는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세기만 했다.
군번표 위에 눌려 있던 그 가격표를 그는 떼어 내 돌바닥에 버렸다. 가슴 앞의 군번표가 쇄골에 붙어 있었다. 표면은 비어 있었다. 그는 글자를 새길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기 이름을 새길 생각이었다. 군번표에는 글자가 없었다. 돌에도 없었다. 그가 새긴 것은 가로줄 하나였다.
그는 일어서서, 새김선 가장자리로 돌아와 섰다. 손바닥의 나사를 그가 움켜쥐었다. 나사가 손금을 배겼다. 아까보다 깊이 배겼다. 왼쪽 무릎이 또 한 번 소리를 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다음은 위로 오르는 것이었다.
제단의 돌바닥이 한 겹 한 겹 작아졌다. 별 모양의 옛 성벽이 평지 한 조각을 둘러싸고 있었다. 평지 위의 그 틈은 가는 선 하나로 줄어들었다. 성벽 밖은 항만이었다. 항만의 물은 검었다. 수면에는 흰 반사광이 한 줄 한 줄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떨어진 것이었다. 다리 하나의 불빛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줄 위에는 차가 있었고, 차의 불빛이 깜빡였다. 모두 흰빛이었다. 동쪽 강에는 바지선 한 척이 서 있었다. 뱃머리의 등은 켜져 있지 않았다. 항만 저쪽 끝에는 물결이 있었다. 물결이 제방에 하나씩 부딪혔다. 아주 멀었고, 아주 둔했다. 서쪽 하늘은 낮았다. 구름이 항만 위를 누르고 있었다. 구름 밑바닥은 도시의 불빛에 비쳐 잿빛 흰색이었다. 항만 밖은 도시였다. 도시의 불빛이 한 칸 한 칸 켜져 있었다. 사람 사는 집의 창이었다. 한 층이 한 층을 누르고 있었다. 섬의 그 조각상은 아직 서 있었다.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손의 횃불은 녹청색이었다. 불은 없었다. 관 위의 녹청은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다. 조각상의 받침대는 별 모양이었다. 옛 성벽의 틈이 정확히 그것을 마주하고 있었다.
다섯 채 건물의 밤 불빛은 아직 켜져 있었다. 그 다섯 탑은 같은 초에 밝아졌다. 다섯 도시의 다섯 곳에 서서, 하나하나, 모두 쓰러지지 않았다. 빛 속에서 더는 숫자가 위로 뛰어오르지 않았다. 한 토막 한 토막의 흰빛과, 한 토막 한 토막의 어둠만 남았다. 그것들은 더는 우리 모양이 아니었다. 그저 다섯 채의 건축물일 뿐이었다. 하나하나 꼭대기가 다 보였다. 꼭대기에는 등이 있었고, 안테나가 있었고, 사람이 설치한 피뢰침이 있었다.
섬 밖 수면 위 하늘에, 작고 따뜻한 점 네 개가 떠 있었다. 하나가 하나에 붙어 있었고, 어느 것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은 네 척의 배의 목구멍 같은 입구였다. 저마다 한 점만 밝았다. 그것들의 불빛은 아주 낮았다. 수면까지 비추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가장 오래 밝았다. 한 번 꺼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그 네 척의 배는 내려오지도 않았고, 날아가지도 않았다.
더 위로는 구름이었고, 대기권의 가장자리였고, 불이 켜진 밤의 면 한 덩어리였다.
그때, 목소리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앤드루의 목소리였다. 제단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 안정되어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떨어져야 할 자리에 떨어졌다. 그 목소리는 높아지지도, 낮아지지도 않았다.
“탑은 아직 있어. 다만 오늘부터, 그건 그저 한 채의 건물이야.”
등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칭롼이 먼저 걸어왔다. 숄이 돌바닥에 끌렸다. 새김선 바깥쪽까지 걸어와 멈췄다. 움직이지 않았다. 미쓰키가 직도를 어깨 뒤로 거두고 걸어와, 그녀 옆에 멈췄다. 스완의 신발 앞코가 한 번씩 돌바닥을 찍었다. 선 가장자리까지 찍고, 역시 멈췄다. 재원이 마지막으로 왔다. 그의 그림자가 반 박 늦게 그들 뒤에 내려앉았다. 재원은 말하지 않았다. 그의 숨은 아주 가벼웠다. 다른 누구의 숨보다 가벼웠다. 네 사람이 한 줄로 섰다. 새김선 바깥쪽에 섰고, 누구 하나 넘어오지 않았다. 앤드루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돌바닥의 외투를 집어 들고, 털어서 펴, 어깨에 다시 걸쳤다. 시선이 돌아와, 그 자신의 손에 떨어졌다.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냈다. 손바닥은 비어 있었다. 바지 주머니 속 그 서식의 둘째 장은 아직 있었다. 두 번 접혀 있었고, 접힌 자리는 희었다. 이번에는 승인할 것이 없었다.
노병은 약국 문 앞에 서서,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서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발바닥의 찬 기운이 신발 밑창에서 올라오게 두었다. 바람이 바다 쪽에서 왔다. 짠 기운을 조금 머금고, 길 어귀를 지나, 약국 문 안으로 불어 들어갔다.
오른 다리는 무릎 아래가 그 의족이었다. 그는 아주 곧게 서 있었다. 무게중심은 왼발에 실려 있었다. 오른쪽 접합부는 땅에 걸치기만 했다. 아주 안정되게 걸쳐 있었다.
그의 가방은 아직 계단 위에 있었다. 입구가 단단히 잠겨 있지 않았다. 영수증 한 장이 귀퉁이를 내밀고 있었다. 바람이 거리를 지나가며, 그것을 한 장 넘겼다. 그는 줍지 않았다. 돌아가 가져오지도 않았다. 영수증 뒷면에 세 번 쓴 그 연필 글씨, 그는 보지 않아도 동그라미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
계단 아래 물웅덩이에 하늘이 비쳐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물을 보았다. 물속의 하늘은 검었다. 별들은 모두 곧았다. 비틀리지 않았다. 서쪽의 그 한 덩어리는 비어 있었다. 원래 그 한 줄기 초승달이 걸려 있던 곳에, 아무것도 없었다. 한 덩어리가 비어 있었다. 물웅덩이가 한 번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맞은편 2층의 그 창에는 예전에 늘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지금은 어두웠다. 멀리서 지하철이 지나갔다. 소리가 땅 밑에서 올라왔다. 한 차례, 잠깐 멈췄다가, 또 한 차례.
셔터가 통째로 올라가 있었다. 꼭대기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 레일 끝에 걸쇠가 하나 있었다. 걸쇠가 풀려서, 셔터는 꼭대기에 멈춘 채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 레일 속의 먼지가 한 줄 문질러져 나가, 밑의 쇠가 드러나 있었다. 빛났다. 문 앞의 매트는 아직 젖어 있었다. 그는 매트 위에서 한 번 멈춰, 신발 밑창의 물기를 문질러 말린 뒤에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른발의 접합부가 문턱에 부딪혀 소리가 한 번 났다. 문턱 위의 물빛도 한 번 반짝였다.
가게의 냉장고는 더는 울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문을 들어설 때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귀 밑에 깔렸다. 오래 깔려 있었다. 지금은 없었다. 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뿐이었다. 바람이 불자, 선반 끝의 걸이가 한 번 부딪혔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는 아주 짧았다. 벽에는 시계가 하나 걸려 있었다. 초침은 멈춰 있었다. 그다지 딱 떨어지지 않는 숫자에 멈춰 있었다. 그는 시간을 보지 않았다.
그는 창고에서 여섯 해를 일했다. 그것은 다른 곳이었다. 다른 종류의 선반이었다. 매달 말에 재고를 조사했다. 선반 한 줄, 또 한 줄을 셌다. 다 세면 위에 보고했다. 보고한 수는 장부의 수와 맞아야 했다. 맞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셌다. 그는 느리게 셌지만, 틀리게 센 적은 거의 없었다. 센 수는 모두 작은 수첩에 옮겨 적었다. 글씨를 아주 작게 썼다. 자리를 아끼려고. 이 약국의 선반도 그는 세어 보았다. 소염제, 진통제, 피부약. 한 줄 한 줄, 줄마다 다 세어 보았다. 피부약 그 줄은 열한 상자였다. 한 상자도 빠지지 않았다.
계산대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산대 위의 장부는 아직 엎어져 있었다. 그는 넘겨 보지 않았다. 벽의 그 팻말은 아직 있었다. 계산대에서 계산해 주십시오. 모서리가 말려 있었고, 테이프로 붙인 적이 있었다. 계산대 유리 밑에는 가격 목록 한 장이 눌려 있었다. 종이 귀퉁이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벽의 그 팻말과 같았다. 그는 한 번 보고, 계산대로 가지 않았다.
선반은 끝까지 뻗어 있었다. 끝에는 빈 금속 걸이 한 줄만 남아 있었다. 걸이마다 가격표가 없었다. 걸이 끝은 아래를 향했다.
가운데 칸, 문에서 가까운 그 칸에, 흰 상자가 아직 있었다. 옆면의 작은 가격표는 없어졌다. 바래지 않은 흰 자국 한 조각만 남아 있었다.
그는 손을 뻗었다. 손은 허공에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이 펴져 상자 위에 내려앉았고, 그것을 집어 내렸다.
상자는 가벼웠다.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가벼웠다. 종이 상자 한 귀퉁이에 눌린 자국이 한 줄 있었다. 여러 번 옮겨지면서 남은 것이었다.
그는 옆면을 돌려 보지 않았다. 그 한 줄의 모양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장부를 한 번 짚어 보았다. 두 번째까지 짚어 보았지만, 셈이 나오지 않았다. 그 장부를 그는 맞추지 못했다. 다시 맞출 생각도 없었다.
지난번에 그는 그것을 돌려놓았다. 라벨을 바깥으로 하고, 옆의 몇 상자와 줄을 맞췄다. 이번에는 돌려놓지 않았다.
상자 뒷면의 날짜는 아직 멀었다. 다음 달의 일은 계단 위에서 여러 번 생각했다. 매번 다음 달에 보자고 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상자를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바지 주머니 속 열쇠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한 번 소리를 냈다. 아주 가볍게. 그는 고개를 숙여 손바닥을 한 번 보았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흰 테두리 하나뿐이었다. 방금 상자를 움켜쥐어 눌린 자국이었다.
그가 문 앞까지 걸어가 몸을 돌릴 때, 가방끈이 계단에 한 번 쓸렸다. 입구에서 종이 한 장이 또 미끄러져 나와 두 번째 단에 떨어졌다. 그는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거리로 누군가 오고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지하철 출구에서 걸어 나와 계단 앞을 지나갔다. 그를 한 번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도 한 번 끄덕였다. 그 사람은 멈추지 않고, 맞은편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닫혔다 했다. 문의 종이 한 번 울렸다.
문밖의 가로등은 여전히 그 하나였다. 갓 속의 그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날아갔는지도 몰랐다. 돌고 있는 것은 없었다. 갓 가장자리에 먼지가 한 둘레 있었다. 먼지 위에 아주 작은 손자국이 하나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그는 몰랐다. 불빛이 문으로 새어 들어왔다. 주홍빛이었다. 같은 주홍빛이 돌아와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그것이 한 군데에 멈추지 않았다. 손등 전체에 가득 내려앉았다. 손가락 마디의 오래된 상처들, 그 흰 것들이 한 줄 한 줄, 모두 환하게 비쳤다. 그가 숨을 내쉬었다. 그 흰 입김 한 덩어리도 주홍으로 비쳤다. 흩어졌다. 아주 천천히 흩어졌다. 주홍빛은 이 한쪽 손등에만 내려앉았다. 다른 곳은 모두 원래 색 그대로였다.
그는 계단에서 걸어 내려왔다. 길 건너 배기구의 흰 김이 피어올랐다. 한 줄기 한 줄기, 바람이 불면 흩어졌다. 세 번째 단의 그 검은 얼룩은 아직 있었다. 그는 보지 않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오른발의 접합부가 한 번씩 소리를 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진열창 앞을 지날 때, 유리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등 뒤의 셔터도 비쳤다. 셔터는 올라가 있었다. 유리 속의 그 문 구멍은 비어 있었다. 편의점 문에서 종이 또 한 번 울렸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외투 지퍼를 턱까지 올렸다. 길 어귀의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길에는 차가 없었다. 그는 선 뒤에 섰다.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선을 건넜다.
맞은편까지 걸어가서, 그는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천 너머로 그 약 상자를 한 번 눌렀다. 그러고는 한 번 웃었다. 아주 짧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