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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 인계 전

제31장병 위의 수위선

水线

중국어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제31장 병 위의 수위선

다섯 탑은 이미 밝아졌다. 이 한 탑은 그것들 다음, 또 다른 밤에 밝아졌다.

아침 7시 20분, 솔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왔다.

안전모 뒤챙에 그의 작업자 번호가 적혀 있었다. 0417. 유성펜으로 쓴 것이었다. 글씨는 땀에 한 번 불었고, 햇볕에 한 번 바래서, 절반이 흐려져 있었다. 그는 별동 출입구 계단에 앉아 모자를 벗어, 거꾸로 들고 보았다. 첫 획은 아직 있었다. 둘째 획은 끊겼다. 마지막 획은 점 하나만 남았다. 모자 안감은 젖어 있었다. 모자 속에 밤새 흘린 그의 땀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는 맡아 보지 않았다. 계단에 신발 자국이 하나 있었다. 그가 방금 내려오면서 밟은 것이었다. 자국 가장자리의 먼지는 이미 말라 있었다.

여기서 그는 공사일칠이었다. 이 번호는 선명하게 덧그려야 했다.

현장에 들어오던 날, 안전관리자가 가설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안전모 착용, 끈 매기, 서명. 항목마다 두 번씩 말했다. 뒤챙은 바깥을 향해야 한다. 출입구의 사람이 열 걸음 밖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마지막 항목뿐이었다. 나갈 때는 서명해야 한다. 서명하지 않은 날은 치지 않는다. 그는 물었다. 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안전관리자가 말했다. 치지 않는다는 거다.

그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유성펜을 꺼냈다. 모자를 무릎에 눌러 놓고, 한 획 한 획 덧그렸다. 첫 번째를 다 그리고, 한 번 보았다. 모자란 것 같아 두 번째를 그렸다. 세 번째는 펜촉을 첫 번째 자국 안에 눌러 넣었다. 아주 천천히 눌렀다. 글자의 가장자리가 다시 단단해질 때까지 누르고서야 손을 멈췄다.

밤에 그는 별동 11층에 있었다. 펌프카의 관이 아래층에서 뻗어 올라왔다. 콘크리트가 관 입구에서 떨어져 내렸다. 잿빛 흰색이었고, 젖은 돌 냄새가 났다. 그는 진동봉을 안에 꽂았다가, 뽑고, 다시 꽂았다. 표면에 시멘트 물이 올라오면 옆으로 한 걸음 옮겼다. 저녁 7시부터 아침 6시까지, 한 차 또 한 차,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그 층의 태반을 지나왔다. 마지막 차는 6시가 넘어서 왔다. 그는 슬럼프 콘으로 재러 갔다. 콘은 머리를 잘라 낸 양철 원뿔이었다. 윗구멍은 100밀리미터, 아랫구멍은 200밀리미터, 높이는 300밀리미터였다. 그는 그것을 철판 위에 세우고, 재료를 세 층으로 나누어 담았다. 층마다 스물다섯 번씩 다졌다. 그런 다음 콘을 천천히 들어 올려, 비빈 콘크리트가 얼마나 주저앉는지 보았다. 부어 넣은 것은 이레 동안 젖은 채로 양생해야 한다. 바싹 마를 때까지 양생하면 바닥판이 된다. 밟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계단은 임시로 놓은 쇠 계단이었다. 한 단 내려갈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는 11층에서 한 단 한 단 걸어 내려왔다. 해는 이미 떠 있었다. 희었다. 색이 없었다. 보도의 물웅덩이를 비추어, 수면이 한 번씩 반짝였다. 햇볕이 뒷목에 내리쬐었다. 아직 뜨겁지는 않았다. 보도 가의 쓰레기통은 막 새로 칠한 참이었다. 번호 글씨가 아직 젖어 있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문질러, 한 줄이 번져 있었다. 길목의 정류장 표지판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바람이 종이 귀퉁이를 들어 올렸다가 다시 눌렀다. 보도로는 첫 무리의 차가 지나갔다. 바닥에 타이어 자국이 한 줄 한 줄 남아 있었다. 보도 반대편에는 철근이 쌓여 있었다. 한 묶음 한 묶음, 잘린 면이 빛났다. 아직 녹슬지 않았다. 야간 근무자들은 대부분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 구간에 이르면 모두 말이 없었다. 그는 빨리 걷지 않았다. 안전모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뒤챙이 바깥을 향했다.

작업 야드 출입구의 접수 부스는 흰 양철 가건물이었다. 울타리 바로 옆에 있었다. 창이 열려 있었다. 창유리에 금이 한 줄 가 있었다. 위 모서리에서 창틀까지 비스듬히 갔다. 투명 테이프로 붙여 놓았는데, 테이프 가장자리가 들떠 있었다. 창턱에 보온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뚜껑이 한 줄 틈만큼 열려 있었다. 김이 틈으로 새어 나왔다. 한 가닥 한 가닥, 바람이 불면 끊겼다.

두카가 안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아주 깨끗했다. 손톱은 가지런히 깎여 있었고,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없었다. 귀에 연필 한 자루를 끼우고 있었다. 그 연필로 그는 서명을 한 적이 없었다. 셀 때만 썼다. 그는 6시 반에 문을 열었다. 7시에서 8시 사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장 서명을 하는 사람은 모두 이 창구를 거쳐야 했다. 이 한 시간 동안, 퇴장 기록표에는 이미 백사십 몇 줄이 차 있었다. 기록용 펜은 가는 끈으로 책상 다리에 매여 있었다. 끈은 새로 간 것이었다. 지난달 것보다 조금 굵었다. 충분히 길었다. 글씨를 쓰는 사람의 손은 닿았고, 펜을 든 채 떠날 수는 없었다. 앞사람이 다 쓰고 펜을 끈이 닿는 자리에 돌려놓았다. 펜촉이 책상에 닿으며 탁, 소리가 났다.

퇴장 줄은 울타리 밖까지 늘어서 있었다. 앞사람들이 하나씩 창구로 다가갔다. 모자를 손에 들고, 뒤챙을 바깥으로 향했다. 어떤 사람은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아래팔에 시멘트 가루가 묻어 있었다. 가루가 말라 흰 한 겹이 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아주 낮게 눌렀다. 말을 마치자 끊었다. 다시 걸지 않았다.

앞사람이 다 쓰고, 두카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두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연필이 표 위를 또 한 번 짚었다.

7시 반, 솔이 작업자 명찰을 창구 안으로 내밀었다. 두카는 명찰을 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한 줄 한 줄. 이름은 보지 않고, 번호만 보았다. 백삼십 몇 번째 줄에서 멈췄다. 귀에서 연필을 내려, 그 줄 끝을 한 번 짚었다.

“공사일칠.” 그가 말했다.

솔이 그 줄의 퇴장란에 체크 표시를 했다. 퇴장 기록표의 종이는 아주 얇았다. 체크가 뒷장까지 배어 나갔다. 뒤집힌 채로, 작은 한 덩어리였다. 금방 말랐다. 펜이 책상 가장자리까지 끌려가, 끈이 팽팽해졌다가 다시 느슨해졌다. 그는 안전관리자의 말을 떠올렸다. 치지 않는다는 건, 치지 않는다는 거다. 그는 그 체크 표시를 보았다. 체크 옆에 잉크가 조금 묻어 있었다. 배어 나온 것이었다.

두카가 퇴장 기록표 밑에 깔린 등기부를 펼쳤다. 도장 찍을 자리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뒤쪽으로 넘기자, 종이에 한 줄이 인쇄되어 있었다. 글자 크기가 모두 같았다. LM-1-06 인도 번호 ‘검수 미통과, 인도 보류.’

솔은 창밖에서 그 줄을 보았다. 그 번호는 알지 못했다. ‘인도’라는 두 글자는 알아보았다. 현장 게시판에도 이 두 글자가 있었다. 어느 동의 인도 날짜인지 적혀 있었다. 몇 번 뒤로 미뤄져, 지금까지 왔다.

두카가 퇴장 기록표에 도장을 찍었다. 인주는 검었다. 그는 등기부를 덮어, 원래 자리에 도로 눌러 놓았다.

8시 반, 그는 2동 5층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는 침대가 넷 있었다. 둘은 이불이 깔려 있었고, 하나는 비어 있었고, 하나는 이불이 네모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위 칸 사람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발 하나만 내놓아 침대 가장자리에 걸쳐 두었다. 그의 침대는 창가 아래 칸이었다. 에어컨은 절반이 고장 나 있었다. 문 쪽만 바람이 나왔다. 바람은 창가에 이르면 끊겼다. 침대 머리맡 벽에 못이 하나 박혀 있었다. 못에 금속 고리가 하나 걸려 있었다. 머리맡 탁자 위에 빈 과자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상자 뚜껑에는 바다 한 자락이 인쇄되어 있었다. 창밖으로 탑 발치 한 토막이 보였다. 은회색이었다. 이 각도에서는 아랫부분만 보였다.

그는 어깨에서 안전줄을 내렸다. 줄은 회색 웨빙이었다. 한쪽 끝에 카라비너가 하나 꿰매여 있었다. 웨빙에는 한 줄 한 줄 닳은 자국이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걸면서 생긴 것이었다.

카라비너를 금속 고리에 걸었다. 한 번 걸었는데, 물리지 않았다. 풀었다. 다시 걸었다. 또 풀었다. 세 번째에, 찰칵 소리가 나며 물렸다. 그제야 그는 손을 뗐다.

그는 누웠다. 작업복도 벗지 않았고, 신발도 벗지 않았다. 신발 밑창의 먼지는 말라 있었다. 밟기만 하면 떨어졌다. 이불은 그가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두 번 기웠다. 바늘땀이 줄곧 곧았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방 안은 어두운 잿빛 한 겹이었다. 창밖으로 차가 지나갔다. 차 불빛이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와, 천장 위로 흰 한 줄을 그으며 미끄러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구석의 에어컨 배관에서 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잠깐 멈췄다가, 또 한 방울. 그는 몇 방울을 셌다. 열일곱 번째 방울까지 세고, 더는 세지 않았다.

1시에 그는 깼다. 팔이 몸 밑에 깔려 저려 있었다. 그는 그것이 저절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방 안의 빛이 천천히 색을 바꾸었다. 잿빛에서 흰빛으로. 오후의 빛이었다. 벽의 한 군데가 환하게 비쳤다. 그는 그 한 군데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 앉아, 먼저 머리맡을 보았다. 안전줄은 아직 못의 고리에 걸려 있었다. 카라비너가 아주 단단히 물려 있었다. 그는 머리맡 고리에서 안전모를 내려, 뒤챙을 한 번 보았다. 덧그리지는 않았다. 베개 밑의 휴대폰이 한 번 진동했다. 시공팀 단체 문자였다. 그는 보지 않았다.

침대 옆의 물병은 1.5리터 플라스틱 병이었다. 첫 달에 작업 야드 매점에서 산 것이었다. 라벨은 진작 뜯어 버렸고, 끈적한 접착제 한 둘레만 남아 있었다. 그가 엄지로 문질러 보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마커로 병 몸통에 가로줄을 한 줄로 그어 두었다. 스스로 재어 가며 그은 것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한 칸 한 칸. 한 칸을 마실 때마다, 옆에 한 줄을 그었다. 매번 먼저 마시고, 그다음에 그었다. 먼저 그으면, 손이 빨라지고, 수가 엉킨다. 어젯밤 일을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다섯 번째 줄까지 그었다. 그는 두 번 셌다. 두 번 다 다섯이었다.

그는 다른 숫자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제 것, 그제 것은 한데 섞여,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이 숫자는 기억했다. 어젯밤 마지막 차, 105밀리미터. 80에서 120 사이, 합격. 콘은 그가 직접 들어 올렸다. 콘크리트가 주저앉는 것도 그가 직접 지켜보았다. 이 숫자는 그가 잰 것이었다. 남이 그에게 알려 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이 숫자를 한 번 읊었다. 다 읊고 나서, 내려놓았다.

그는 세면대로 가서 세수를 했다. 수도꼭지의 물은 미지근했다. 그는 물이 차가워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 씻었다. 다 씻고, 고개를 들어 벽의 거울을 한 번 보았다. 거울은 양철 한 장이었다. 한 군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움푹한 곳으로 보면 얼굴이 비뚤어졌다. 그는 고개를 바로 하고서야 똑똑히 보았다. 그런 다음 병을 집어 들어, 창 쪽 빛에 한 번 비춰 보았다. 빛이 병을 통과해 탁자 위에 떨어졌다. 작고 밝은 물 그림자였다. 그는 병뚜껑을 꽉 잠그고, 침대 옆에 도로 놓았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도시락 하나를 사서 계단에 앉아 먹었다. 가게 입구에는 천 발이 걸려 있었다. 발의 무늬는 이미 바래 있었다. 맞은편에는 낮은 집들이 한 줄 서 있었다.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문의 페인트는 새로 칠한 것이었다. 한 짝 한 짝, 색이 모두 같았다. 밥은 식어 있었다. 그는 한 술 한 술 다 먹고, 용기를 통에 버렸다.

4시 20분, 그는 숙소에서 작업 야드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나무가 없었다. 그는 담 밑의 그늘을 골라 걸었다. 길에 살수차 한 대가 지나갔다. 뿌려진 물이 땅에 젖은 선 하나를 그었다. 선은 금세 말랐다. 작업 야드의 냉각 드럼통은 쇠통이었다. 차양 지붕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겉에는 흰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뚜껑 가장자리에 작게 팬 자국이 한 줄 있었다. 무언가에 부딪혀 생긴 것이었다. 오후의 해가 하루 종일 그것을 달구었다. 통 몸통은 만지면 뜨거웠다. 수도꼭지 손잡이도 뜨거웠다. 그는 소맷부리로 감싸서 돌렸다. 나오는 물은 미지근했다. 쇠 녹 냄새가 조금 났다.

통 옆에는 두 사람이 더 물을 받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가득 받자, 각자 갔다.

그는 병을 가득 채우고, 뚜껑을 꽉 잠갔다. 미지근했다. 손바닥과 비슷했다. 병이 손 안에서 한 번 흔들렸다. 물이 병 벽을 따라 출렁 넘어갔다가, 다시 평평해졌다. 그 몇 줄의 선은 모두 물 아래에 있었다.

그는 차양 지붕 아래로 돌아왔다. 차양 지붕은 차광망 한 장이었다. 밑에는 시멘트가 깔려 있었다. 차광망이 햇빛을 한 조각 한 조각 잘라 놓았다. 옆에는 계단이 한 줄 있었다. 역시 시멘트였다. 세 단이었다. 맨 위 단이 다른 곳보다 한 토막 낮았다. 차광망의 그림자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림자 가장자리는 빛이었다. 빛 속은 하얗게 번득였다.

차양 지붕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면, 탑이 거기 있었다. 탑 발치 한 토막은 은회색이었다. 창이 한 칸 한 칸 나 있었다. 창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아래에서 위로, 한 층 한 층 연무 속으로 거두어져 들어갔다. 작업 야드의 가림막은 희었다. 탑 발치 바깥의 땅을 가리고 있었다. 탑 남쪽에는 물이 한 자락 있었다. 그는 가 본 적이 없었다. 탑 위의 일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별동에서 석 달을 일했다. 매일 밤 서 있던 곳은 별동의 바닥판이었다.

4시 반, 한 여자가 길목에서 걸어왔다.

그녀는 직도 한 자루 외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칼몸이 오른쪽 아래팔에 붙어 있었다. 두 손은 몸 옆에 늘어뜨려져, 아주 작게 흔들렸다. 신발 밑창에는 먼지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접수 부스 창구 앞까지 걸어와 멈췄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두카가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밀어 창턱에 올려놓았다. 종이에는 세 칸이 있었다. 성명, 회사, 용건. 그녀가 펜을 집었다. 펜은 매여 있었다. 끈이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끈을 한 번 당겨, 펜을 끌어당긴 뒤에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성명 칸에 이름을 적었다. 미쓰키. 솔은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 이름이 똑똑히 보였다. 용건 칸에는 이렇게 적었다. 탑을 보러 왔음. 회사 칸은 비어 있었다. 그녀는 그 칸을 한 번 보았다. 쓰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다.

두카는 종이를 한 번 보고,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그는 연필 끝으로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아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 다음 책상에서 두꺼운 종이 카드 한 장을 집었다. 앞면에 V-06이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 한 줄에 ‘도착: 뉴욕, 어젯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창구 밖으로 밀어냈다. 솔은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 한 줄이 똑똑히 보였다. 카드 모서리는 접힌 적이 있었다. 뒷면은 희었다. 글자가 없었다.

“저쪽에서 기다려요. 안내할 사람은 해 질 녘에야 와요.” 두카가 말했다.

그녀는 카드를 짧은 웃옷 주머니에 넣고, 몸을 돌렸다.

그녀는 차양 지붕 쪽으로 걸어왔다. 빨리 걷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에 앉았다. 맨 아래 단에 앉아, 차광망의 기둥에 등을 기댔다. 차광망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한 토막 옮겨 가, 계단의 둘째 단에 올라와 있었다.

그녀의 양쪽 어깨는 맨살이었다. 짧은 웃옷의 깃 아래로, 양쪽이 다 드러나 있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은 말라 있었다. 색이 옅었다. 그녀는 혀로 축이지 않았다. 왼쪽 눈 밑에 아주 옅은 청람빛 자국이 하나 있었다. 휘었고, 짧았다. 손목에는 작은 매듭이 하나 묶여 있었다. 끈은 벚꽃 분홍이었다. 손톱만 한 크기였다. 손목은 아주 가늘었다. 뼈가 불거져 있었고, 매듭이 그 위에 눌려 있었다. 직도에는 칼집이 없었다. 그녀는 앉으면서 그것을 오른쪽 아래팔에서 내려, 옆 계단에 가로로 놓았다. 손잡이에 감긴 벚꽃 분홍 끈이 위를 향했다. 손목의 작은 매듭과 같은 끈이었다.

그녀의 머리는 뒤로 묶여 있었다. 아주 단단히 묶여 있었다. 머리끝 한 가닥이 삐죽 솟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땀이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땀을 흘렸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을 폈다가, 다시 오므렸다. 무릎에 계단의 먼지가 조금 내려앉았다. 그녀는 털어 내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 앉아서, 탑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 아래의 땅을 보고 있었다. 검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차광망의 그림자 속에서 기어 나왔다. 시멘트 갈라진 틈 가장자리까지 기어가 한 번 멈췄다가, 돌아서 지나갔다. 차광망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조금 더 옮겨 가, 그녀의 신발 가장자리에 닿았다. 그녀는 줄곧 움직이지 않았다.

길목으로 차가 한 대씩 지나갔다. 그녀의 눈은 한 대 한 대를 따라갔다. 차가 꺾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거두어졌다. 차광망 가장자리에 새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를 한동안 보다가, 날아갔다.

솔은 한 단 위에 서 있었다. 손에 병을 쥐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한동안 보았다. 그러고는 병을 아래로 내밀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병을 한 번 보고, 받았다. 뚜껑을 돌려 열고, 한 모금 마셨다. 물은 미지근했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이 두 번 움직였다. 그녀는 뚜껑을 도로 돌려 잠갔다. 다 마시지 않았다. 병 몸통의 수면이 조금 내려갔다. 아직 선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고마워요.” 그녀는 아주 낮게 말했다. 끝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병을 그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병을 다리 옆에 두었다. 계단 모서리에 기대 놓았다. 병 입구가 위를 향했다.

그때 시공팀 사람 하나가 도시락을 받쳐 들고 차광망 밑을 지나갔다. 도시락 뚜껑이 꼭 닫혀 있지 않았다. 안의 밥에서 아직 김이 올라왔다. 그 사람은 그녀를 한 번 보고, 또 솔을 한 번 보았다. 멈추지 않고, 보도 저쪽 끝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람이 길목에서 불어왔다. 시멘트 가루를 싣고 와서 그녀의 양쪽 어깨에 불었다. 그녀는 움츠리지 않았다.

5시 40분, 그는 출입구로 돌아왔다. 출입구가 곧 울타리였다. 울타리 저쪽은 탑 발치로 통하는 길이었다. 길 양쪽에는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줄기에 지지대가 묶여 있었다. 길 끝은 탑 발치의 문이었다. 커다란 유리문 두 짝이었다. 문 안에는 석판이 깔려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줄곧 깔려 있었다. 울타리 옆에 팻말이 하나 서 있었다. 글자가 아주 컸다. 입장 시 안전모, 퇴장 시 서명. 팻말 밑에는 전광판이 하나 있었다. 전광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섰다. 저녁 7시 근무까지는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오늘 밤 부을 곳은 12층이었다. 그는 속으로 타설 순서를 한 번 짚어 보았다. 다 짚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는 안전모를 손에 들었다. 뒤챙이 바깥을 향했다.

젊은 작업자 하나가 울타리 가에 쪼그려 앉아, 신발 끈을 풀고 다시 맸다. 다 매고 나서, 또 풀고, 또 맸다. 세 번째로 매고서야 일어섰다.

그는 울타리 가에서 건너다보았다. 차양 지붕 밑에 사람 그림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보고, 다시 손의 모자로 눈을 돌렸다.

시공팀 작업반장이 다가왔다. 중년 남자였다.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종이에는 오늘 밤 타설 순서가 적혀 있었다. 그는 솔에게 종이를 한 번 보여 주고, 다시 거두었다. “펌프카 30분 당겨진다. 관부터 한 번 씻어 내.” 작업반장이 말했다. 솔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작업반장은 갔다. 솔의 손바닥은 젖어 있었다. 그는 안전모를 다른 손으로 옮겨 들었다.

부스 창턱의 보온병에서는 이제 김이 나지 않았다. 뚜껑이 꼭 닫혀 있었다.

야간 근무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울타리 안쪽에 섰다. 모두 안전모를 손에 들었다. 뒤챙이 바깥을 향했다. 드는 법이 다들 비슷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화면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가, 꺼졌다. 한 사람은 안전모를 뒤집어 뒤챙을 한 번 보고, 다시 뒤집었다. 숙소 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신발 밑창이 자갈을 밟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크게 울렸다.

5시 반, 그가 아직 차양 지붕 밑에 있을 때, 시공팀의 소형 트럭 한 대가 들어와 냉각 드럼통 옆에 섰다.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려, 짐칸에서 얼음 한 자루를 내렸다. 비닐 자루에 성에가 끼어 있었다. 그 사람은 얼음을 냉각 드럼통에 쏟아부었다. 와르르 소리가 났다. 얼음덩이들이 통 바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가, 하나씩 떠올라 통 벽에 부딪혔다. 그는 손을 털고, 갔다.

이것은 야간 근무자를 위해 넣는 것이었다. 매일 이 시간에 한 자루씩 넣었다. 솔은 여기서 석 달을 일했다. 알고 있었다.

부스 안에서, 두카가 입장 기록표를 세고 있었다. 귀에서 연필을 내려, 한 줄 한 줄 짚어 나갔다. 아주 천천히 짚었다. 입장 기록표의 이름은 보지 않았다. 번호만 보았다. 5시 50분, 그는 다 셌다. 고개를 들어 창밖의 하늘을 한 번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연필을 귀에 도로 끼웠다.

“이백열넷.” 그가 말했다.

6시 정각, 탑이 밝아졌다.

불이 탑 발치에서부터 켜졌다. 맨 아래 한 줄의 창이 한 칸 한 칸 밝아졌다. 아주 빨리 밝아졌다. 누군가 한 짝 한 짝 눌러 켜는 것 같았다. 밝아진 그 층이 위로 올라갔다. 첫 번째 가로띠를 지나고, 두 번째를 지났다. 두 번째 가로띠까지 밝아졌을 때, 맨 아래 그 줄은 이미 다 밝아져 있었다. 창틀은 희었다. 창 안의 불도 희었다. 가로띠는 짙은 색이었다. 탑 몸체의 은회색보다 한 겹 짙었다. 아래쪽 네 줄은 그가 세어 보았다. 창이 너무 많아서, 칸은 셀 수 없었다. 그래서 층을 셌다. 불이 네 번째 띠까지 가자, 연무 속으로 들어갔다.

연무가 먼 건물들을 같은 잿빛으로 눌러 놓았다. 연무 위의 불은 그에게 보이지 않았다. 빛만 연무 속에서 배어 나왔다. 희고, 찼다. 따뜻한 빛깔은 한 점도 없었다. 연무의 색이 조금 변했다. 아까보다 희어졌다가, 천천히 잿빛으로 돌아갔다.

공사장의 크레인은 탑 발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붐이 들려 있었다. 거기 등이 하나 매달려 있었다. 등은 켜지지 않았다.

공사장의 소리가 한 박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부스 안에서, 두카의 연필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내려앉지 않았다.

해는 이미 연무 뒤로 넘어가 보이지 않았다. 연무의 가장자리에 아직 빛이 조금 남아 있었다. 아주 낮게 남아 있었다. 하늘은 아직 다 어두워지지 않았다. 하늘은 납빛 잿빛이었다. 잿빛 밑으로 찬 흰빛이 비쳐 나왔다.

울타리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솔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안전모 뒤챙의 글자를 보았다. 글자가 찬 흰빛을 받고 있었다. 세 번 덧그린 자리가 다른 곳보다 조금 밝았다.

눈가 쪽, 북동쪽, 하늘에서 옅은 보랏빛 테두리 하나가 한 번 밝아졌다. 그는 보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차양 지붕 쪽에서 걸어왔다. 직도가 몸 옆에 늘어져 있었다. 칼끝은 아래를 향했다.

그녀는 손에 병을 들고 있었다. 병 몸통에 가는 물기가 한 겹 서려 있었다. 물방울이 병 벽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 그녀의 손가락 마디까지 흘렀다. 그녀는 울타리 가까지 걸어와 멈췄다. 병을 건넸다.

병은 차가웠다.

그는 손을 뻗어 받았다. 그의 손가락은 그녀의 손에 닿지 않았다.

병 벽은 불룩했다. 북동쪽 하늘을 한 조각 담고 있었다. 옅은 보랏빛 테두리 하나, 테두리 안은 흰 구름이었다. 한 덩이 한 덩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병 속의 하늘만 보았다. 불룩하고, 작았다. 병 벽에는 울타리 그림자 한 토막과, 그 자신의 손 하나도 비쳐 있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돌아갔다. 양쪽 어깨는 여전히 맨살이었다.

찬 기운이 손바닥에서 손목으로 걸어갔다.

병 몸통의 수위선은 아직 있었다. 한 줄도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