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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 완벽하지 않아

제17장첫 번째 이음매

第一条缝

중국어 원문을 옮긴 번역입니다.

제17장 첫 번째 이음매

표 묶음 가운데 맨 아래 장이 화장대 위에 펼쳐져 있었다. 네 귀퉁이마다 연필이 눌러 놓여 있었다.

이 분장실은 낡은 건물 이층에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았다. 거울 틀 둘레에 전구가 한 바퀴 붙어 있었다. 대부분은 흰 전구였다. 오른쪽 끝 두 개만 텅스텐 필라멘트였다. 따뜻한 노란빛이었고, 작았다. 화장대 상판에는 파우더 자국이 여러 줄 나 있었다. 서른두 명이 쓴 파우더가 눌려 생긴 자국이었다. 말라서 굳은 뒤로는 몇 군데가 반들거렸다. 대 옆에는 흰 사기 그릇 하나가 기대어 있었다. 그릇 가장자리에 이 빠진 자리가 하나 있었다. 밑바닥에는 검게 변한 파우더가 조금 남아 있었다.

표의 맨 위에는 다섯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이음매 위치표.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 한 줄이 있었다. 수정할 때마다 위치와 날짜를 표기할 것. 글씨는 검었다. 줄 간격이 고르게 맞춰져 있었다. 종이는 두꺼웠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한 바퀴 눌린 자국이 있었다. 오랫동안 손가락이 눌러서 생긴 자국이었다.

표 왼쪽 위에는 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칠. 의자의 번호였다.

표 가운데에는 얼굴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한 토막뿐이었다. 귀뿌리에서 턱 끝까지였다. 선은 연필로 그은 것이었고, 아주 가늘었다. 턱선 위에는 짧은 선들이 있었다. 한 줄마다 앞 선의 가장자리를 누르고 있었다. 한 겹씩 안으로 모여들었다. 멀리서 보면 지도 위의 등고선 같았다. 선마다 옆에 번호가 있었고, 번호 뒤에는 날짜가 있었다. 번호는 손으로 쓴 것이었다. 한 획 한 획 적은 글씨였다. 숫자가 모두 작았다.

가장 바깥의 선이 가장 길었다. 턱 왼쪽에 있었다. 길이는 2센티미터였다. 옆의 번호는 1이었다. 날짜는 3월이었다. 연도 숫자는 나중에 그은 선에 눌려 있었다. 여러 해 전 봄이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었다. 표의 왼쪽 아래에는 흰 실 한 토막이 투명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다. 실 끝은 이미 잿빛으로 바래 있었다.

이 장의 번호는 1부터 149까지 적혀 있었다. 표는 모두 마흔일곱 장이었다. 한 장씩 포개져 있었다. 화장대 서랍에 들어 있었다. 종이마다 같은 턱이 인쇄되어 있었다. 다 채우면 다음 장으로 넘겼다. 앞 장에서 멈춘 자리부터 이어서 그렸다. 서랍을 뽑으면 종이 가장자리끼리 부딪혀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맨 위 장의 마지막 선은 번호가 7000이었다. 날짜는 올해 여름이었다.

거꾸로 세려면 칠천 번째 선에서 첫 번째 선까지 세어 내려가야 했다. 마흔여섯 장을 넘겨야 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이 종이 모서리에서 잠깐 멈췄다. 그러고 나서 밀어 넘겼다.

번호를 적다 보니 연필이 점점 짧아졌다. 서랍에는 깎아 둔 연필들이 한 줄로 놓여 있었다. 긴 것부터 짧은 순서였다. 가장 짧은 한 자루는 토막만 남아 있었다. 그 토막을 고무줄로 새 연필 끝에 단단히 묶어 두었다. 번호 몇 군데는 다시 덧그려져 있었다. 원래보다 굵었다.

서랍에는 표가 한 묶음 더 있었다. 서른한 장이었다. 장마다 왼쪽 위에도 번호가 적혀 있었다. 대부분은 선이 한두 개뿐이었다. 점 하나만 찍힌 것도 있었다. 8번 장에는 선이 없었다. 얼굴 윤곽만 종이에 인쇄되어 있었다. 턱은 깨끗했다. 날짜가 하나 있었는데 그해 2월이었다. 19번 장에는 선이 하나 있었다. 아주 짧았다. 옆에 날짜는 없었다. 누가 손 가는 대로 그은 선처럼 보였다.

그해 2월, 이 분장실은 한 선발 프로그램의 분장을 맡았다. 화장대는 두 줄로 놓였다. 대마다 앞에 거울이 하나씩 있었다. 분장하는 사람은 대를 하나씩 옮겨 다녔다. 손에 든 파우더 케이스가 열렸다 닫혔다 했다. 닫히는 소리는 모두 같았다.

서른두 명의 소녀가 한 줄로 섰다. 같은 머리에 같은 화장이었다. 옷깃에는 흰 번호표가 달려 있었다. 번호표는 가는 핀 두 개로 천에 꽂혀 있었다. 핀이 찔린 자리마다 천 위에 작은 점이 남았다. 촬영 시작 전, 한 여자가 플라스틱 직선자를 들고 줄의 맨 앞에서 맨 뒤까지 재었다. 사람마다 턱에서 귀뿌리까지의 거리를 재고 숫자 하나를 불렀다.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숫자는 번호표 뒷면에 적혔다. 8번 뒷면에는 91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여자는 회사 사람이었다. 그 뒤로 이 분장실에는 다시 오지 않았다.

서서 기다리는 동안 서른두 명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무릎이 살짝 흔들렸다. 그 앞사람의 뒷목도 따라 흔들렸다. 흔들림이 줄을 따라 지나갔다. 다시 조용해졌다.

카메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며 지나갔다. 한 사람마다 2초씩 멈췄다. 카메라 앞의 조명은 아주 밝았다. 모든 사람의 이마에는 흰빛 한 덩이가 눌려 있었다.

카메라 뒤에는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손에는 클립보드가 들려 있었다. 클립보드에는 인쇄된 표가 끼워져 있었다. 번호마다 뒤는 비어 있었다. 그 사람은 한 명이 지나갈 때마다 번호 뒤에 작은 체크를 그렸다.

뽑힌 사람은 넷뿐이었다. 이름이 불릴 때 그녀는 둘째였다. 8번 뒤에는 체크가 없었다.

그녀는 일곱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른쪽은 여덟째였다.

엄마는 거실에서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은 낡았다. 화면 네 귀퉁이가 어두웠다. 소리가 조금 흐릿했다. 엄마는 눈이 좋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소파와 아주 가까웠다. 엄마는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셌다.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셌다. 두 번 셌다. 서른두 명이었다.

엄마는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다시 줄였다. 또 올렸다. 화면 속 서른두 개의 얼굴이 움직였다. 동시에 손을 들었다. 동시에 멈췄다.

엄마는 그중 어느 사람이 자기 딸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끄자 화면 가운데 흰 점이 하나 남았다. 점은 천천히 줄어들다가 사라졌다.

그 방송 뒤, 그녀는 간판 없는 의원에 갔다. 의원은 이층에 있었다. 의자는 흰색이었다. 조명은 차가웠다. 벽에는 커다란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 얼굴에는 선이 없었다. 의사가 한 마디 물었다. “어디를 고칠 건가요.” 그녀의 손가락이 왼쪽 턱 위에서 멈췄다. 한 자리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가느다란 절개선이 생겼다. 세 바늘을 꿰맸다. 실밥을 뽑자 2센티미터 길이의 선이 남았다. 그것이 표 위의 첫 번째 선이었다. 뽑아낸 짧은 실은 그녀가 집에 가져갔다. 투명 테이프로 표의 왼쪽 아래에 붙였다.

다음 방송에서는 엄마가 첫 장면에서 바로 그녀를 알아봤다. 엄마는 볼륨을 한 칸 올렸다. 화면을 향해 말했다. “너구나.”

그날 서른두 명의 분장을 고쳐 준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혼자였다. 손에 든 파우더는 그가 직접 섞은 것이었다. 그는 낮은 걸상에 앉아 있었다. 걸상 다리에 금이 가 있었다. 그는 철사를 두 바퀴 감아 두었다. 서른두 번째 사람에 이르러서도 그의 손목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 오른쪽에 선 소녀는 번호표에 8이 적혀 있었다. 8번에 이르렀을 때 그의 브러시가 왼쪽 턱 위에서 멈췄다. 거기에 아주 얕은 선이 하나 있었다. 귀뿌리에서 비스듬히 내려온 선이었다. 그 소녀 자신의 것이었다. 색이 피부와 거의 같았다. 그는 그 위를 쓸지 않았다. 브러시는 그 선을 피해 돌았다. 파우더는 선의 양옆에만 내려앉았다.

그날 작업이 끝나자, 그는 8번 화장대 위에 브러시 한 자루를 놓았다. 손잡이는 그녀 쪽을 향했다. 브러시 털은 비스듬히 잘려 있었다. 한쪽은 길었고, 한쪽은 짧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다음 대를 치우러 갔다.

두 번째 선은 오른쪽 턱에 있었다. 왼쪽을 고친 뒤로 오른쪽이 평평해 보였다. 평평한 것이 어딘가 틀려 보였다.

세 번째 선의 날짜는 가을이었다. 그 옆 빈자리에 연필 글씨가 한 줄 있었다. 글씨는 작았다. 적힌 말은 “화면발”이었다. 그 글씨는 그녀가 쓴 것이 아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누군가 그녀 대신 표에 적어 둔 것이었다. 획이 짧았다. 어느 획에도 끝이 늘어진 데가 없었다.

세 번째 선 뒤로 그녀는 더는 의원에 가지 않았다.

그 의원의 의자에는 다시는 앉지 않았다. 표의 날짜는 그때부터 모두 그녀가 직접 적었다. 틀리면 손톱으로 눌러 가로줄을 그었다. 줄의 한쪽 끝이 종이 가장자리 밖으로 나갔다. 그 옆에 다시 적었다. 그어 버린 글자는 종이 뒷면에서도 보였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손가락을 턱에 댔다. 한 번 누르면 피부 밑에서 새 선이 올라왔다. 선은 저절로 아물었다. 흉은 남지 않았다. 거의 보이지 않는 선만 남았다. 만지면 차가웠다. 선이 나오는 자리는 매번 달랐다. 어떤 때는 턱이었고, 어떤 때는 귀뿌리 앞으로 손가락 한 마디쯤이었다.

그 뒤의 선은 모두 턱에 있지 않았다. 아흔일곱 번째 선은 귀 뒤에 있었다. 길이는 2밀리미터였다. 번호가 선 가장자리에 빽빽이 붙어 있었다. 백이십 번째 선은 왼쪽 눈썹 끝에 있었다. 그것도 2밀리미터였다.

백 번째 선의 날짜는 이듬해 6월이었다. 백 번째 선 뒤로 날짜가 점점 촘촘해졌다. 하루에 세 개씩 적은 날도 있었다. 세 선의 번호가 한데 몰려 있었다. 연필 끝으로 하나씩 짚어야 구별이 되었다. 삼백 번째 선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이미 세 번째 장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 뒤로는 장마다 먼저 표를 거울 앞으로 가져가야 했다. 그래야 턱 위의 선에 맞출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엄마는 얼굴을 화면 앞으로 바싹 들이댔다. 오래 보았다.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는 겨울에 떠났다. 떠난 날, 텔레비전은 켜져 있었다. 아무도 끄지 않았다.

그 뒤로 그녀는 첫 번째 선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녀는 원래의 모양을 찾았다. 텔레비전 위에는 액자가 하나 서 있었다. 액자는 세 번 바뀌었다. 바꿀 때마다 새로 찍은 사진이 들어갔다. 엄마는 그 뒤로 자주 얼굴을 액자 앞에 들이댔다. 오래 바라보았다. 다 보고 나면 소매로 액자를 닦았다. 집 앨범 속 사진의 얼굴도 모두 나중에 찍은 것이었다. 초기의 몇 장은 한 번의 이사 때 잃어버렸다. 사진을 넣은 종이 상자가 가는 길에 비를 맞았다. 상자 밑바닥이 삭아 뚫렸다. 남은 것은 모두 나중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니 남은 것은 그녀 자신의 기억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턱의 원래 모양을 떠올렸다. 떠올린 모양은 지난번에 고친 모양과 겹쳤다. 둘을 떼어 낼 수 없었다. 떠올릴 때마다 그것은 지난번 고친 결과에 더 가까워졌다.

그 의원은 나중에 간판을 바꿨다. 입구에는 다른 글자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길 건너편에 잠시 서 있었다. 건너가지 않았다.

그녀는 종이 한 장에 한 번 해 본 적이 있었다. 표 뒷면과 같은 종류의 종이였다. 기억에 의지해 그 턱을 그렸다. 세 번 그렸다. 세 번 모두 달랐다. 처음 그린 선은 지금보다 짧았다. 두 번째로 그린 선은 왼쪽 귀뿌리까지 뻗었다. 세 번째로 그린 선은 일흔 번째 선이 있던 자리 위에 겹쳐졌다. 그녀는 더 그리지 않았다. 세 장의 종이는 모두 서랍 맨 안쪽에 넣었다. 번호는 붙이지 않았다.

표 뒷면에는 연필 글씨가 한 줄 있었다. 글씨를 힘주어 썼다. “왼쪽 턱, 원래의 모양.” 그 뒤는 비어 있었다. ‘양’ 자의 마지막 획을 긋는데 연필심이 부러졌다. 검은 점이 하나 남았다.

그해 겨울 어느 밤,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표의 선을 하나씩 턱에 대 보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보았다. 맞는 선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기억에 의지해 한 번 고쳤다. 고치고 나니 원래와 더 멀어졌다. 그녀는 다시 떠올렸다. 다시 고쳤다. 한 번 고칠 때마다 표에 선이 하나씩 늘었다. 한 줄이 한 움큼이 되었다. 한 움큼이 큰 덩어리가 되었다. 겹마다 다른 겹을 눌렀다.

칠천 번째 선 뒤로 표 뒷면에는 더 이상 글씨가 없었다.

그녀는 어릴 때 춤을 추고 돌아오면, 엄마가 엄지로 흐트러진 귀밑머리를 귀 뒤로 눌러 넘겨 주었다. 한 번 누르고 평평하게 폈다. 엄지는 귀뿌리에 멈췄다. 잠깐 멈춘 뒤에야 뗐다. 엄마의 엄지는 차가웠다.

그때 그녀는 춤을 출 때 귀밑머리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바로 누르지 않았다. 춤을 다 춘 뒤에야 엄마가 눌러 넘기게 했다.

그 멈춤은 그녀에게 늘 있었다. 연습실 거울은 벽 한 면 전체였다. 그녀는 춤을 한 대목 추고 나면 거울 앞에 섰다. 손을 들었다. 엄지를 귀밑머리에 댔다. 잠깐 멈췄다가 내렸다. 연습을 마칠 때도 그렇게 했다.

그 뒤로 그녀가 누른 것은 뺨 위의 이음매였다. 손끝이 이음매 위에 멈췄다. 잠깐 멈췄다. 뺨 옆이 들려 올라와 작은 거울 면이 되었다. 그녀는 엄지로 그것을 눌러 도로 내려앉혔다.

그 뒤로 그녀는 더 이상 거울 앞에 서지 않았다. 맨 뒷줄 의자에 앉았다. 손에는 펜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펜은 검었다. 뚜껑에 한 바퀴 눌린 자국이 있었다. 오랫동안 손가락이 눌러서 생긴 자국이었다. 사람이 거울 앞에 설 때마다 그녀는 3초 동안 보았다. 보는 순서는 턱, 눈, 손이었다. 펜 끝을 종이에 한 번 찍으면, 그것이 표시가 되었다.

바깥 사람들은 그녀를 퍼펙트 미러라고 불렀다. 그 이름은 표에 없었다.

그녀가 평가해서 떨어뜨린 첫 사람은 그 소녀였다.

그 소녀는 그때 뽑히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는 그녀를 기숙사에 들이고 연습생으로 남겼다. 그렇게 몇 해를 머물렀다. 월말 평가는 가장 안쪽 연습실에서 열렸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거울 틀 위의 차가운 흰빛 등 한 줄만 켜져 있었다. 그 등은 거울 이쪽 면만 비추었다. 등 뒤의 벽은 어두웠다.

그 소녀는 문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잠깐 멈췄다. 손으로 문틀을 짚었다. 문틀의 칠이 한 군데 벗겨져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드러난 나무 위에 놓였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턱을 거울 틀 아랫변에 맞췄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맨 뒷줄에 앉은 사람이 3초 동안 그녀를 보았다. 펜 끝을 종이에 찍었다. 그러고는 종이를 돌려 거울 앞 탁자 위로 밀었다.

종이에는 “너무 안 맞아.”라고 적혀 있었다. 비고 칸에 적힌 말이었다. 획이 세게 눌려 있었다. 종이 뒷면을 만지면 한 줄이 볼록하게 잡혔다.

그 소녀는 한 번 보았다. 집지 않았다.

종이 옆에는 플라스틱 직선자 하나가 있었다. 턱을 재는 데 쓰는 자였다. 가장자리는 곧았다. 눈금은 새것이었다. 맨 뒷줄에 앉은 사람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녀를 다시 보지도 않았다. 자는 탁자 위에 남았다.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 소녀는 다가가서 그것을 집어 들었다.

다음 날, 복도 게시판에 새 명단이 붙었다. 그달 거울 앞에 선 사람은 스물세 명이었다. 펜 끝이 찍힌 것도 스물세 번이었다. 가로줄이 그어진 이름은 일곱이었다. 그 소녀의 이름도 그중 하나였다. 줄은 곧았다. 펜 자국이 세게 눌려 있었다. 줄 밑의 글자는 아직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뒤 그 소녀는 이 연습실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문으로 걸어 들어왔다. 손에는 출석부를 들고 있었다.

그 자는 그 뒤로 줄곧 그 소녀의 것이었다.

기숙사 책상은 철제 틀이었다. 칠이 세 군데 벗겨져 있었다. 서랍 손잡이는 한 번 부러졌었다. 철사 한 가닥으로 묶어 두었다. 그녀는 매일 밤 이 책상 앞에서 자로 자기 턱을 쟀다. 영점은 귀뿌리에 댔다. 다른 쪽 끝은 턱끝을 향했다. 엄지로 영점을 누르자 얕은 자국이 생겼다. 다 재고 나면 숫자 하나를 읽었다. 방 안에는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숫자를 읽었다. 자는 다시 가방에 넣었다. 열쇠와 나란히 두었다.

자의 가장자리는 둥글게 닳아 있었다. 열쇠가 닳게 한 것이었다. 열쇠는 늘 자와 부딪혔다. 여러 해 동안 부딪혔다. 매달 첫날이면 그녀는 자를 가방에서 꺼냈다. 천으로 가장자리를 한 번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넣었다.

그 브러시도 그 소녀의 것이었다. 그해 분장을 고쳐 준 사람이 그녀의 대 위에 놓고 간 것이었다. 그녀는 줄곧 가방 옆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나무 손잡이는 낡았다. 쥐는 자리에 옅은 색 마모 자국이 한 바퀴 나 있었다. 손잡이 끝에는 얕게 새긴 자국이 하나 있었다. 직선 한 줄이었다. 그녀는 그 브러시로 파우더를 여러 번 쓸었다. 파우더가 다 쓸리지 않아서, 나무 손잡이 틈에 흰 가루가 한 겹 쌓였다.

기숙사를 나오던 날, 그녀는 자를 가져가지 않았다. 자는 책상 서랍에 넣었다. 낡은 시간표 위에 올려 두었다. 시간표 글씨는 그녀가 직접 쓴 것이었다. 칸마다 연습 시간이 적혀 있었다. 둘째 주까지 쓰고 멈춰 있었다.

그 뒤, 한 소년이 이 책상으로 들어왔다. 서랍을 열자 자가 그 안에 있었다.

그 소녀는 바깥의 한 방으로 옮겨 갔다. 방에는 침대 하나와 작은 탁자 하나가 있었다. 서랍은 없었다. 그녀는 작은 탁자 위에 물컵 하나를 놓았다. 컵 바닥의 물자국이 말라서 흰 테가 한 바퀴 남았다.

서울 옛 연습실은 낡은 건물 삼층에 있었다. 복도 끝 방이었다. 문틀은 나무였다. 칠이 한 군데 벗겨져 아래의 짙은 나무가 드러나 있었다. 문틀에는 오래된 긁힌 자국이 하나 있었다. 문 앞의 텅스텐 필라멘트 전구는 따뜻한 노란빛이었다. 문틀은 비추었지만 문턱은 비추지 않았다. 복도에는 대걸레 물 냄새가 났다. 옅었다.

그 소녀는 지금 이 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연습생 수업도 그녀가 맡았다. 오전 아이들 반이 나가자 방에는 빈 물병 몇 개와 의자 하나만 남았다. 빈 물병 하나에는 글자가 없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모서리가 들려 있었다. 창턱에 가는 먼지가 한 겹 앉아 있었다. 먼지 위에는 작은 손가락 자국이 몇 줄 나 있었다. 아이들이 창가에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며 남긴 자국이었다. 자국들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창밖은 산이었다. 나무 빛깔이 짙었다. 산꼭대기의 탑이 나무 뒤로 한 토막 드러나 있었다.

벽은 거울이었다. 거울 틀 아랫변에 검은 테이프 선이 한 줄 붙어 있었다. 그녀가 붙인 것이었다. 턱의 높이와 정확히 마주하고 있었다. 평가 날 그녀의 턱이 멈췄던 자리였다. 붙일 때 그녀는 연습실 서랍에 있던 자로 한 번 재 보았다. 테이프 한쪽 끝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한 번 눌러 평평하게 했다.

화이트보드에는 오늘의 순서가 적혀 있었다. 세 줄이었다. 글씨는 가늘었다. 첫째 줄은 여덟 박이었다. 둘째 줄은 둘씩 한 조였다. 셋째 줄은 월말 평가였다. 날짜만 적고 시간은 적지 않았다. 셋째 줄의 글씨는 한 번 지웠다가 다시 썼다. 앞의 두 줄보다 작게 썼다.

연습 전에 그녀는 가방 옆주머니에서 그 브러시를 꺼냈다. 거울 틀 위의 먼지를 쓸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쓸었다. 테이프 선이 있는 곳에서는 브러시를 돌렸다. 선의 양옆만 쓸었다. 다 쓸고 나서 브러시 털을 위로 향하게 해 가방에 도로 넣었다.

벽 모서리의 음향 기기는 왼쪽 스피커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음악은 오른쪽에서만 나와 한쪽으로 치우쳐 들렸다. 벽에 붙은 바의 한쪽 끝이 풀려 있었다. 테이프가 한 바퀴씩 겹쳐 감겨 있었다. 아래로 처진 쪽 테이프는 이미 잿빛으로 바래 있었다. 그녀는 고치지 않았다.

자는 여기 없었다. 그녀의 손에 든 것은 연습실 서랍에 있던 것이었다. 눈금은 새로 찍혀 있었다. 가장자리는 곧았다.

오후의 햇빛이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세 번째 마룻널을 비추었다. 널 틈에는 먼지가 끼어 있었다. 창가에서 세어 세 번째 마룻널은 다른 널보다 색이 한 톤 옅었다. 오랫동안 밟혀서 생긴 색이었다. 창유리에 얇은 김이 한 겹 서려 있었다. 방 안의 사람들이 오래 서 있어서 맺힌 김이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김 위에 선을 하나 그었다. 그은 자국은 금세 다시 덮였다.

오후에 마른 소년이 거울 앞에 섰다. 그의 왼쪽 어깨는 오른쪽보다 반 손가락쯤 낮았다. 후드티 소매 끝은 한쪽이 길고 한쪽이 짧았다. 그가 고른 것은 여덟 박짜리 한 대목이었다. 그는 바닥에 앉아 잠깐 다리를 눌렀다. 왼쪽 무릎을 눌렀을 때 무릎에서 작은 소리가 한 번 났다. 그는 벽에 반쯤 뜯긴 스티커를 한 번 보고 나서야 일어섰다. 첫 박은 창가에서 세어 세 번째 마룻널 위에 떨어졌다. 둔한 소리가 났다. 그것이 그의 박자였다.

첫 번째 여덟 박에서 그의 손이 가슴 앞에서 펼쳐졌다. 손끝이 먼저 나갔고 팔이 뒤따랐다. 두 번째 여덟 박에서는 발끝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그러고 나서 발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마룻널을 보지 않았다. 거울 속의 그를 보았다. 보는 순서는 턱, 눈, 손이었다. 그녀는 창가에 서 있었다. 두 손은 늘어뜨리고 있었다. 창턱의 먼지가 그녀의 옷에 쓸려 한 군데 떨어져 나갔다.

그 춤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벽의 스티커도 그 사람의 것이었다. 그 사람은 이 방에서 마지막 주까지 연습했다. 박에 들어설 때마다 음악보다 반 박 늦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세 번째 여덟 박에서 소년의 손끝이 먼저 뒤로 움츠러들었다. 몸이 따라 움직였다. 발이 내려앉았다. 음악보다 반 박 늦었다. 그 반 박은 손끝이 먼저 되돌아간 그 순간이었다. 다섯 번째 여덟 박에서는 그의 팔이 그 사람보다 조금 낮았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바꾼 것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손을 들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한 번 눌렀다.

음악이 멈췄다.

“너무 안 맞아.”

그녀는 말할 때도 눈이 아직 거울 속에 있었다.

“원래대로 돌려.”

말을 마치고도 그녀는 바로 돌아서지 않았다. 제자리에 선 채 두 손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엄지는 바지 솔기에 댔다. 그 시간은 여덟 박 정도 길었다.

옛 연습실에서, 그 소녀는 소년의 춤을 다 보고 나서 한마디 했다. “너무 안 맞아.” 그러고는 제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